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
여성정책 본격 전개한 세계 ‘첫’ 정치지도자로 기억해야
여성은 수혜·동원 대상이 아니라 세력화돼야 할 ‘주체’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슬픔을 가져왔다. 국내외 언론들은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 민주화, 남북한 평화 통일을 위한 노력, 세계 평화에 대한 기여를 공통적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 대부분은 그의 업적 중에서 빠져서는 안 될 여성정책에 대한 공로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를 이해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데 여성정책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내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에서, 때로는 세계적으로 여성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첫 정치 지도자로 꼽힐 수 있다. 그는 임기 중에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설립하였고, 이를 3년 후에 여성부로 확대 개편하였다. 또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과 같은 포괄적인 법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아·태경제협력체(APEC)에 여성자문기구를 신설하여 의장국을 맡는 등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와 유엔차별철폐위원회 등의 국제무대에 한국 여성정책과 활동을 그 중심에  끌어들였고, 여성정책과 활동을 사회발전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선도적 역할을 자임했다.

그러나 여성정책의 차원에서 그를 기려야 하는 것은 남녀평등이나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가시적인 제도 도입에 있지 않다. 그의 빛나는 점은 제도화 이면에 있는 여성정책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와 전망 그리고 여성 집단의 발전에 대한 그의 진정어린 의지에 있었다고 본다. 이전 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한 이해와 비교해 볼 때 그의 여성정책에 대한 이해와 의지는 분명히 달랐다.

김대중 정부 이전의 여성정책은 여성을 하나의 문제 집단이나 요보호 집단으로 보는 데서 출발했었다. 그래서 보건복지부의 일개 과에서 다루거나, 아니면 정무장관이 맡아 관리하는 대상 집단 정도로 여성을 상정하여 여성정책을 만들었다. 이에 반해 국민의정부가 채택한 여성정책의 여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에서 출발했다. 여성은 대상이 아니라, 정책 프로그램을 통하여 세력화되어야 할 ‘주체’로 상정되었다.

한국 여성의 역사에서 이는 매우 의미심장한 차이가 만들어지는 지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졌던 인식, 즉 여성을 세력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민주화, 인권의 회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 없이는 성립되기 힘든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인식에 기반하여 크로스커팅 정책으로서 여성정책을 이해하고 그 특성에 맞추어 입안과 집행을 가능하게 하는 정부 부처의 모습이 무엇일지를 고민하고 실험해본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행자부, 법무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노동부, 농림부 같은 부처에 여성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또 각 지방자치제 수준에서도 전국 16개 시·군에 여성정책 담당조직과 기구를 설립하기까지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왜 필요한지를 설득하여 공감을 이끌어내고, 또 이러한 시도가 시행착오를 거쳐 주요 제도로 안착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그에게 허락된 임기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이러한 시도의 제도적 완결을 이룬다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그의 집권 시기에 성취하지 못한 많은 것에 대해 실망하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 여성정책이 새로운 국면에서 축소되어가는 상황에 접하면서 한국 사회에 새로운 여성정책이 제도화되기 시작했던 맥락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는 거리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그가 완성한 업적만이 아니라 실현하지 못했지만 그가 꿈꾸었던 구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지금 우리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그 분이 바로 실현되지 못한 꿈들을 다시 불러와야 하는 지금 이 시점에 돌아가셨다는 점이리라. 하지만 우리는 그 분이 온몸으로 보여준, 민주주의는 승리한다는 표상을 잊지 않을 것이다. 여린 마음의 소유자, 그의 눈물이 우리의 가슴에 닿아 강물을 만들고, 그 강물이 메말라가는 이 땅의 산야를 푸르게 적셔 생명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믿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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