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여자들도 만나면 여전히 남편·아이 자랑
서른 살 여자들도 만나면 여전히 남편·아이 자랑
  • 이재은 / 자유기고가
  • 승인 2009.08.14 10:49
  • 수정 2009-08-14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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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자리에 갇힌 ‘심심한 젊은 세대 여자’들 많아
새로운 계획과 포부로 살아왔던 모습 되돌아봐야
며칠 전 친한 친구가 결혼 발표를 했다. 어찌나 빠르게 결혼 준비를 진행했던지, 만난 지 6개월 만에 청첩장도 다 돌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친구의 싱글 인생을 위로하고, 새로운 인생을 축하하기 위해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어머, 지지배! 살 빠지고 예뻐진 거 봐라! 연애가 좋긴 좋은가보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홍조를 가득 띤 친구의 얼굴은 반쪽이 됐고 통통하던 허리는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냘픈 몸매로 변해있었다. 그렇게 왁자지껄 우리의 수다는 무르익었고, 식사가 끝날 무렵 한 친구가 일탈된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흡사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와 같은 것이었다. 모두가 궁금해 하고 듣기를 희망하는 일이었지만,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왠지 꺼려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질문.

“예비 신랑은 어떤 분야에서 일하시니?”

“외국계 기업에서 금융 컨설팅을 하는 사람인데, 연봉도 높고 시댁도 굉장히 부유한 편이야. 몰랐는데 벌써 집도 장만해 놨더라고. 다행히 고생스럽게 시작은 안 하겠어. 호호호.”

친구는 마치 예상 질문을 꿰고 있었다는 듯이 술술 답변을 쏟아냈고, 우리의 대화의 초점은 서서히 ‘우리’가 아닌 ‘그 남자’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머! 잘됐다. 그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정말 집이 있는지 없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나도 다행히 신랑이 집을 해 와서 여유 있게 살고 있잖니.”

“정말 부럽다. 우린 언제 돈 모아서 집 사니. 그래도 이번에 우리 신랑 승진해서 정말 다행이야. 연봉이 많이 올랐더라고.”

결국, 또 이렇다.

서른 무렵부터 여자들이 만나면 수다의 반은 남편, 아기, 시댁과 관련된 것들이다. 요즘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어떤 고민들로 힘들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학창시절, 시험 점수 1~2점에 열을 올리던 우리들이었는데 지금은 남편 연봉 일이 천에 목을 매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을까.

문득, 언젠가 엄마가 “요즘은 친목모임에서 자식 자랑하려면 3만원, 손자 자랑하려면 5만원 내야 한다”며 “그런데도 여자들이 그렇게 자식, 손자 자랑을 못해서 안달들이다”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났다. 그때는 자기 자신에 대해선 자랑할 게 없는 여자들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한참 어린 나 역시 ‘타인 자랑놀이’에 빠져들고 있다. 얼마나 서글프고 부끄러운 풍경이란 말인가!

여성의 경제활동과 사회진출이 당연시되고,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쟁력 있는 전문 여성 인력들도 넘쳐나고 있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보니 여전히 많은 여성이 ‘아내’의 자리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매년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많은 포부들로 부풀어 있던 여자들이 남편의 연봉과 새로 장만한 아파트 평수를 논하고 있는 ‘심심한 아줌마’로 변해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왠지 우리들이 변했다고 반성하고 한탄하기엔 혼자 열등생이 되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일까? 혹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받아들여졌던 ‘여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속닥거림이 여전히 우리를 비겁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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