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업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아주 잠깐 생각하다 바로 “딸을 낳아 키운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상대방이 얼른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마 그분은 다른 대답을 기대했던 듯하다. 올해로 벌써 22주년을 맞이하는 한 회사의 창업주로서 직업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이룬 어떤 것을 첫 번째로 들 것이라 여겼나 보다. 물론 사회생활을 통해 이룬 것도 좀 있을 것이나 마음 가득 긍지에 차서 ‘이것입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딸과 함께한 시간, 그녀로 인한 기쁨과 다른 것들을 견주기엔 비교가 안 된다는 생각이다.

요즘 출산율로 온통 야단이다. 노인 부양이 큰 부담이 될 것이며, 이 사태는 리히터  규모 9.0의 인구지진에 해당한다고 예견한다. 저출산율과 초고령화로 빠르게 진입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와 투자 위축에 따른 경제 성장세의 추락, 기업의 생산성 하락, 사회보장제도 붕괴, 재정부담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막상 여성의 입장에서는 출산, 특히 육아와 관련하여 지금과 같은 사회적 인프라라면 과연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가라는 데 의문을 표시할 것이다.

최근 미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1975년부터 2005년까지 30년간 선진 24개국의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과 인간개발지수(HDI 0.0∼1.0)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더니 HDI가 0.85∼0.90에 이르면 출산율이 하락세에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는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HDI가 0.88에 이른 1976년에 출산율이 증가세로 반전됐으며,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특히 상위 10위권 나라들의 2005년 평균 출산율은 1.8명을 넘어섰으며 일부 국가들은 이후 계속 증가했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HDI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한국, 일본, 캐나다는 출산율의 지속적 하락세를 보인다고 한다. 경제가 일정 궤도에 오르면 출산율이 상승하는 현상은 경제 및 사회가 발전하면서 보육환경, 자녀교육 인프라가 개선돼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예외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남녀 간 격차나 여성이 일하기 어려운 노동환경 등 문화적 요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일본의 경우도 1989년 소위 ‘1.57쇼크’ 이후 주요 사회·경제 이슈로 취급되어 왔으나 전반적 상황 개선으로 도전한 것 같진 않다. 유럽 선진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0% 또는 3.0%를 저출산 대책에 쏟아 붓는다. 한·일 양국은 현재 저출산 대책 예산이 GDP의 0.4% 미만이다. 게다가 예산의 배분에서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스웨덴에서와 같이 양성평등에 기반 한 출산·양육과 노동시장 참여의 양립, 다양한 가족 형태의 제도적 수용, 자녀 양육 부담 경감 및 공보육 강화 추진 등 전 방위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이런 사회적·문화적 인프라 개선은 실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다만 기대하는 것은 심각함을 인지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빠른 대응을 해 왔던 저력을 가진 사회라는 점이다. 여성에게 유리하게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과 공생을 위해서도 더 빠른 문화적 변화를 수용해야 함을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임기 여성들에게 일생을 통해 특정 시기에만 할 수 있고,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이 소중하고 빛나는 경험을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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