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문태준의 첫 산문집으로 무더위 여름철에 나왔다. 가만가만 책장을 펼쳤다. 찰나, 어쩜 이럴 수가…! 첫인상이 뭐랄까. 마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WALDEN)’을 마주보듯 두 손에 땀이 흥건히 뱄다. 한마디로 더러운 기분이 금세 해맑아지는 치유의 효능을 주는 책이다.

어린 돼지 윌버와 어른 거미 샬롯의 진실된 우정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그린 ‘샬롯의 거미줄’의 작가 엘윈 브룩스 화이트(E. B. White)는 소로의 ‘월든’을 두고 짤막하게 평하길 “이 책은 인생을 춤추게 하는 초대장이다(This book is like an invitation to life′s dance)”라고 말했던 적 있다. 내 보기엔 딱 맞다!

시인 문태준의 첫 산문집 또한 첫인상이 그러하긴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치고 더러워진 영혼을 해맑게 씻어주는 산사(山寺)에서 띄운 편지글 같다’고나 할까나….

소설가 김훈 선생은 이렇게 추천한다.

“문태준의 얼굴은 그가 태어나고 자라난, 경북 내륙 산간 농촌의 인문지리적 조건과 자연지리적 환경의 산물이다. 이처럼 하나의 완연한 풍경을 완성하는 얼굴은 흔치 않다. 문태준의 글은 자연이나 인간세(人間世)를 향하여 무리한 힘을 가하지 않는다.”

기막힌 추천사가 아닐 수 없다. 이보다 더더욱 기막힌 것은 본문 내용이 차지하니 일부 맛뵈기로 문태준의 글을 지면을 빌려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책 속을 발췌하여 그대로 몇 자 옮긴다. 나는 꽃을 좋아하는지라 ‘한난을 바라보는 시간’(108~110쪽)이 특히 좋았다.

“한난(寒蘭) 한 분을 얻어온 날부터 한난이 자라는 것을 가까이서 바라봅니다. (중략) 수줍고 수줍어 어깨를 왼쪽으로 살짝 돌린 여인의 몸 같습니다만, 한난의 앉은 자태는 말끔하고 꼿꼿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란 볕이 가리비처럼 들어오는 곳에 한난을 놓아두고, 가끔 소량의 물을 뿌려주어 한난의 마른 목을 겨우 축여주거나, 한난 잎이 나아가려는 데 공중이 부족하지 않도록 한난의 바깥 사방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무리한 힘을 행사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다. 애인으로 지내다가 아내가 된 독자 입장이라면 꼭 읽어야 할 문태준의 글은 많지만 딱 하나만 고르자면 ‘들꽃과 하얀 커피 잔과 종이 카네이션’(167쪽)이 그 중 백미로 단연 돋보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한 번쯤은 직접 읽어보시라.

가슴이 뭉클해지고 훈훈해지는 대목은 이렇다. ‘이제 오느냐’(111쪽)가 그것이다.

“나는 가족이라는 말보다 식구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중략) 어느 저녁엔가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신 일이 있습니다. (중략) 텔레비전에 코를 박고 있다 소를 받으러 가는 일을 잊고 있었습니다. 정신이 팔렸습니다. 지게를 지고 소를 몰고 마당으로 들어선 아버지가 지게 작대기를 들어 마룻바닥을 크게 한번 내리치셨습니다. 나와 누이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요.”

식구가 좋은 이유는 “이제 오세요”라는 말을 건네도 전혀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이따금은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말, 자식에겐 “이제 오느냐”라고 혹은 남편에겐 “당신, 이제 오세요”라는 말을 건네자. 왜? 우리는 식구니까….          

느림보 마음 (문태준/ 마음의숲/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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