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리사 용인대 교수 "후배들에게 ‘괜찮은 선배였다’는 말 듣고 싶어요"
이에리사 용인대 교수 "후배들에게 ‘괜찮은 선배였다’는 말 듣고 싶어요"
  • 박화숙 / 여성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09.07.24 12:38
  • 수정 2009-07-24 12: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체육지도자 교육·모임 활성화할 지원단체 설립 추진
선수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베이징올림픽 감동’ 일궈내

 

지난해 여름, 우리들은 행복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의 승전보와 함께 가슴 뭉클한 역동적인 드라마를 보여준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땀과 눈물의 결과로 영광과 환희의 ‘순간’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물론 선수들이다. 하지만 지도자와 그 가족, 그리고 체육회, 경기단체와 정부의 지원 등 보이지 않는 여러 분야의 힘이 모아지지 않았더라면 그런 ‘살아있는 스포츠종합예술’을 만끽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선수단의 총감독이었던 이에리사(54) 용인대 교수는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뒷바라지의 주역이다. 3년 반 동안 국가대표선수들의 요람인 태릉선수촌의 장을 지내며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훈련에 열중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올림픽 후 친지들로부터 “이제는 무슨 낙으로 살지?”라는 문자 메시지를 수없이 받았다는 이에리사 교수를 만났다.

올림픽 이후, 선수촌장의 임기가 몇 달 남아있었지만 사표를 냈고 학교로 돌아갔다. 최근엔 새로 출범한 통합체육회의 선수분과위원장을 맡았다. 지난해의 감동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 자신의 몫에 대해 과장될까 조심스러움을 나타내며 손사래를 친다.

“베이징으로 떠날 무렵, 촛불시위 후유증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했기에 우리 선수들이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기쁜 소식을 많이 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와 바람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해온 선수들을 알기에 그들에 대한 믿음도 컸었고요.”

하지만 당시 이에리사 촌장은 기자들과의 인터뷰 때마다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만큼,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메달을 따내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뜨거운 격려를 해달라”며 “이제는 스포츠 팬들이 성숙한 관중 매너를 보여줄 차례”라고 강조했었다.

대표선수 훈련비 예산 지원 210일로 늘려

다행히 금메달 획득 선수들에게 버금갈 만큼 노메달 선수들에게도 미디어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었다. 카누의 이순자, 남자체조의 양태영, 역도의 이배영 선수 등 노메달 선수들에게 관심을 갖는 여러 이벤트가 있어 그들이 아픔을 잊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단다.

태릉선수촌장을 맡은 그는 많은 일들을 이뤄냈다. 대표선수들의 연간 훈련비 지원 예산을 110일에서 190일까지로 늘렸고 2010년엔 200일, 그리고 2011년엔 적정 수준인 210일까지 지원받도록 토대를 만들어 놓은 것과 태릉선수촌 시설의 개보수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획기적인 업적이다.

1966년 문을 연 태릉선수촌에 그는 1969년 탁구대표선수로 입촌해 훈련한 선수촌 1세대다. 36년 만에 다시 간 태릉선수촌의 시설은 체육계의 발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선수촌이 문화재지역 안에 있어 예산집행 또한 여의치 않았다. 여기저기 발로 뛰어 확보해놓은 선수촌 시설보수 예산이 날아갈 위기에 처하자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대전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극성스러운 노력까지 했다.

선수들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과 관심은 “우리 아이들”이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부상에 대한 스트레스와 승패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수촌 직원들에겐 내 딸, 아들처럼 잘해주기 위해 늘 고민하자고 했죠. 깔끔하고 예쁜 환경으로 선수들이 새롭게 느끼고, 지루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국가대표선수들이 훈련하는 곳이라면 ‘창살 없는 감옥’이 아니라 소속팀의 숙소나 집보다 편안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면 언제나 찾아올 수 있게 촌장 집무실을 오픈해 ‘우리 아이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줬다.

역도의 장미란 선수가 베이징에서 세계신기록을 기록하는 순간, VIP임원석에서 젊잖게 지켜보던 그에겐 ‘초인적인 용기’가 발동했단다. “바벨을 가슴까지 들어 올렸는데 세계신기록 탄생을 지켜보던 관중들이 흥분해 함성을 토하기 시작하더군요. 순간적인 판단으로 그 소음이 미란이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관중석을 향해 조용히 하라며 두 팔을 들어올려 막았답니다. 평소 같았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거죠.” 그만큼 몰입해 응원을 했던 것이다.

정신력이나 투혼과 관련해 그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갖고 있다.

바로 그를 세계적인 탁구 스타로 만든 1973년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다.

단체전에서 승승장구 한국의 구기종목 사상 첫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개인전에서는 첫 경기서 패배, 탈락했다. 단식 경기 19전 전승으로 단체전 우승을 이끈 그의 패배는 세계탁구역사 제32회 대회 첫머리에 기록된 쇼킹한 뉴스였다.

“단체전 우승 이후 분위기에 휩쓸려 해이해진 거였어요. 한국에서 걸려오는 축하전화 받고 흥분된 상태로 하루를 쉰 다음 1회전을 부전승으로 올라 2회전 첫 경기서 스웨덴의 라드버그 선수에게 듀스 끝에 패했죠. 18세 팀의 막내로 철이 없었던 거죠. 단체전을 워낙 중시해 개인전을 소홀히 한 점도 있었고요. 지금 생각하면 자만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용인대 사회체육학과 교수로 탁구부 지도교수도 맡고 있는 그는 탁구부 전담 코치가 있지만 가끔은 훈련에 동참, 선수들의 볼을 직접 받아준다. 선수들과 함께하고 싶어서다. 그녀의 화려한 경력은 익히 알고 있지만 ‘교수님’의 탁구 실력이 어땠는지는, 젊은 지도자나 요즘 선수들이 알리가 없다. 매일 훈련을 하지 않지만 어쩌다 라켓을 잡으면 그 파워와 매서움에 당할 수 없음을 실감하는 기회다.

“얼마 전 제헌절 날 TV 특집 프로그램에서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의 경기 장면을 본 코치가 ‘교수님, 포핸드 드라이브와 백 드라이브, 그리고 찬스 만들어 테이블로 다가와 스매시도 하던데요’라고 했어요. 예전 탁구를 그저 네트 넘기는 정도로 생각했나봐요”라며 웃는다. 사라예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가 우승의 주역으로 꼽힐 수 있었던 것은 당시로선 생각할 수 없던 여자선수의 루프드라이브 기술과 투혼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문영여중 3년 때 국내 최고를 가리는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실업선배를 꺾고 대표선수가 되었다. 선수촌에 합류해 훈련하며 남자선수들이 하는 드라이브를 해보겠다고 천영석 코치에게 졸랐다. 그때부터 지옥훈련이 계속됐다. 하루 700개씩 연속해서 드라이브를 성공시켜야 했다. 중도에 끊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카운트. 라켓을 쥐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쉬지 않고 연습에 매달렸다. 드라이브를 해낼만한 체력훈련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한겨울에도 땀범벅이 되어 머리카락이 뻣뻣하게 얼도록 혼자 남아 트랙을 달렸다.

그는 큰 부상 없이 자기관리를 잘 해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라켓을 눌러주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혹사했던 후유증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침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잡을 수 없어요.”

국내 탁구 일인자의 자리인 전국종합선수권대회 7연속 우승을 지킨 그는 8연속 우승에 실패한 이듬해 버밍엄 세계탁구대회를 마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바로 소속팀인 신탁은행의 코치로 승격한 그는 지도자로도 최고가 될 결심을 하고 서독으로 진출했다. 프랑크푸르트 FTG클럽의 선수 겸 코치로 2년 8개월 동안 활약하며 선수들을 부드럽게 지도하고 융통성있게 포용하는 유럽식 지도방법을 체득했다.

“은퇴를 결심하게 한 1976년 종합선수권대회 결승 경기는 기술적인 요인보다는 심리적 요인으로 졌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는 이기원 선수(산업은행)였는데 제가 평소대로 경기를 풀어가지 못하고 뭔가 신경이 계속 거슬린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으니까요.”

패배의 경험은 선수들을 격려할 수 있는 ‘좋은 약’

패배했을 때의 경험은 지도자가 된 뒤 그가 선수들을 격려하는 데 ‘좋은 약’이 되었다. 대표팀 감독으로서 양영자·현정화 콤비가 88서울올림픽 복식에서 금메달을 일궈내도록 했고, 2004년엔 김경아가 단식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일조했다. 대표선수들을 지도할 때나 대학과 실업팀에서 코치, 감독을 할 때도 그는 늘 같은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 성심성의를 다했다.

최고의 선수에서 지도자로도 성공가도를 달려온 그는 틈틈이 해온 만학에도 마침표를 찍고 1996년 명지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백화점 탁구팀을 창단, 지도했던 그는 2000년 용인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첫 여성 선수촌장을 맡아서는 대외적으로 선수촌을 알리며 예산확보 노력을 실천했고 행정절차에 직접 관여하는 촌장으로 활동, 체육행정가로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3년 전부터 여성 체육지도자를 위한 교육과 모임을 활성화해서 지원하겠다는 꿈을 키워왔다는 그는 요즘 경기인 출신의 교수들이 모여 여성 체육인 후배들을 지원하는 단체를 만들기 위해 준비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은퇴 후의 진로에 대해 가이드하고 지도자로서의 준비와 교육 등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직을 꾸리고 싶어 여러 사람들의 힘을 모으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평가는 했지만 실천하지는 않았던 거지요. 이제라도 경기인 출신 전문인들이 힘을 모아 우리의 체육문화유산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 후배들이 탄탄한 조직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인력관리의 선진화를 이루는 것이 목표입니다.”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솔직하게 의견을 피력하고 정답대로 행동하려고 애쓰는 스타일의 그가 앞으로

m

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