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전에 진애랑 통화했는데 짜증나 죽겠어. 내가 소개팅 좀 해달라고 했더니 ‘너 요즘 진짜 남자가 고픈가보다. 네가 서른 둘 씩이나 되도록 시집도 못 가고 있다니’ 이러는 거 있지?”

뿔이 난 친구는 한참 동안 씩씩거리다 전화를 끊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다. 본인은 학창시절 잘나가는 퀸카였는데, 고르고 고르다보니 결국 별 볼 일 없던 친구들보다도 결혼을 늦게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친구는 심한 패배감에 휩싸여 있었고, 자신을 노처녀 취급한 친구에게 몹시 자존심 상해하는 눈치였다.

서른 무렵부터 친구들을 만나면 패가 갈린다. 결혼을 한 친구, 결혼을 안 하거나 못 한 친구. 결혼을 한 친구들은 가정경제, 임신, 출산 등에 대해 수다를 떨며 그것이 바로 30대 여성이 경험하는 ‘평범한 삶’이라고 일반화하곤 한다. 그들이 말하는 ‘평범한 삶’은 곧 ‘주류의 삶’의 이야기로 확대되고, 결혼을 안 한 친구들의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결혼도 결혼 나름이지, 희생하고 인내하고 초라하게 살아가는 거 하나도 안 부럽다.”

“빨리 승진하고, 연봉 더 받으면 뭐하냐? 그래봐야 이미 한물간 노처녀인데…!”

청팀, 백팀 팀을 나눠 달리기를 할 것도 아닌데 이 둘은 누가 질세라 서로 자신들의 처지가 혹은 위치가 훨씬 낫다고 으르렁거린다. 자신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은근한 신경전은 흡사 전업주부 엄마와 일하는 엄마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것과 닮아있다. 고백하건데,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임신하고 나서 한동안 결혼 안 한 여자들이 부러웠다.

여전히 허리라인이 강조된 피트된 옷을 입고 자신들의 몸매를 자랑하는 그녀들이, 자신의 진로를 위해 무모하리만큼 용감한 도전과 모험을 여전히 시도하고 있는 그녀들이, 온전히 자신의 욕망과 꿈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그녀들의 시간과 삶이 가끔씩 나는 미치도록 샘이 나고 부러웠다. 결혼이라는 제도권 아래 속박돼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들과의 경쟁에서 뭔가 뒤처지는 것만 같은 불안감도 엄습해왔고 훨씬 작은 시시한 무대 위에서 살아가는 듯한 조급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내색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는 날이면, ‘여자라서 행복해요’를 외치며 기혼 여성의 장점만을 부각하곤 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사실은 싱글라이프를 찬미하던 그녀들도 가끔은 나처럼 우울해한다는 점이다.

골드미스로 유명한 한 친구는 어느 늦은 밤 전화를 걸어 “외로워 못살겠다”고 울부짖더니 또 어느 날은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나도 토끼 같은 남편이 있었으면…. 이제는 정착하고 싶다”는 신세 한탄조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녀나 나나 잠이 안 오는 날이 있는 건 마찬가지였고, 위로받고 싶은 날이 있는 건 분명해보였다. 결혼을 원했던 여자나 결혼을 거부했던 여자나 어느 순간, 자신들의 선택에 의문이 생긴다. 과연 이것이 최선이었을까? 그것은 어찌 보면 가지 않은 한쪽 길에 대한 영원한 미련처럼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결혼을 한 여자’ ‘결혼을 안 한 여자’ 모두 어떤 갈림길에 왔을 때 각자에게 맞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고 지금은 자신의 스타일과 상황에 맞게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누가 더 행복한지 내기하고 경쟁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문득, 한밤중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하던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친구야! 너도 맞고, 나도 맞으니 이제 우리 화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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