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여성의 눈으로 본 서울살이’ 전시회가 던지는 질문들
한국살이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다중적 매체 개발도 필요

얼마 전에 특별하고 흥미로운 사진 전시회를 다녀왔다. 그다지 크지 않은 카페의 벽면을 채운 사진들은 그 밑에 ‘완벽하지 않은’ 한국어로 써진 한두 문장의 설명과 함께 관람자의 시선을 오래 잡아끌었다. 담담하게, 그러면서 매우 진솔하게 말을 걸어오는 그 이미지들은 바로 이주 여성들이 포착한 서울의 풍경, 서울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 자신의 꿈과 그리움의 색깔들이다.

‘이주 여성의 눈으로 본 서울살이: 새로 만나는 나날들’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지난 4월 말부터 진행된 사진교육 워크숍의 결과물들로 이루어졌다. ‘창조적인 눈, 주체적인 손길을 가져라’라는 모토 아래 진행된 이 사진교육 워크숍은 이주 여성들의 자기 표현력이 언어에 갇혀있을 수 없다는,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느리지만 낯설지 않은 언어로의 초대’라는 보다 큰 기획 하에 이미 이주 여성들의 글과 그림을 발표하고 전시한 바 있다.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미학 규범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야말로 ‘자기표현과 말 걸기’를 강조하는 이러한 시도들은 이주 여성들이 스스로 이주의 경험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다중언어로 이주의 역사를 쓰는 의미심장한 실천들이다.

이주 여성들은 다른 이주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늘 재현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리고 그 재현물들은 이주 여성들에게 진정한 대화를 신청하는 몸짓이라기보다는 한국의 다른 원주민들에게 일반적인 ‘상식’을 제공하기 위한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사회가 이주 여성들의 통합을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강조하는 것은 한국어 교육이다.

그러나 성인이 될 때까지 다른 문화권에서 산 사람이 모국어가 아닌 낯선 언어를 배워나가는 과정은 시간과 경험을 요구하는 일이다. 즉 ‘이곳’ 원주민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교감했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사회문화적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주민들의 한국어 습득은 근본적으로 그들만의 몫이 아니라 한국 원주민들이 함께 풀어야 할 공동 과제이기도 하다. 단시간에 기계적으로 추진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주 여성들이 그들의 한국살이를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다중적인 매체를 개발하는 것은 한국 시민들의 다문화 감수성 확장을 위해서도 필연적이다.

데리다는 이방인과 환대의 관계를 성찰하면서 이방인은 내게, 소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너무나 낯익고 친숙한 환경 속에 살면서 눈이 멀기 쉬운 ‘우리’에게 이방인은 근본적인 존재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둔감해진 눈과 귀가 다시 밝게 트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번 전시에서 나는 놀라움과 기쁨으로 이러한 눈 트임, 귀 트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방일로나씨는 예를 들어 ‘공부를(공부는) 언제든지 할 수 있어’라는 제목으로 지하철에서 안경을 끼고 책에 몰두해 있는 어떤 중년의 남성을 보여주고 있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 둘러보고, 나도 좀 쳐다봐 주지’라는 짧은 설명이 달려 있었다. 그녀의 또 다른 사진 한 장은 지하철 계단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동정을 구하는 한 (비교적 젊은) 남성을 담고 있다. ‘나는 이렇게 외로운데 저 사람들은 다 행복한가’라고 방일로나씨는 그 남성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섬세한 시선에, 텍스트에 나타난 어떤 지혜로운 유머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속적인 진정한 관계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점차 관계 맺는 능력을 상실하고 분주하게 일터와 소비시장을 왔다 갔다 하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서울시민의 삶의 양식을 그녀의 사진들은 나무람 없는 덤덤한 질문의 시선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 사람들이 좀 더 자상하고 깊이 있는 관심을 보여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그녀의 마음이 그들의 모습에 투영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회는 이주 여성들이 문화소수자로서 주류 문화의 일반화된 문맥에 새로운 안목을 도입할 수 있는, 그리고 문화 생산자로서 한국 사회 생활세계의 상투성에 상큼하고 신선한 새 기운을 불어넣는 중요한 행위자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잘’ 통합된다는 것은 한국의 원주민들이 얼마만큼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통합을 늘 그들의 과제로만 말하곤 하는 우리의 둔감한 습관에 통절한 반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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