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은 종종 나를 ‘슈퍼우먼’이라 부른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까닭에 한 달에 열흘은 해외출장을 다니고, 그나마 서울에 있는 시간에도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쑤인데 어떻게 아이까지 키우느냐며 찬사를 보내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지기는커녕 가슴이 답답하다. 다름 아닌 나대신 아들을 키워주시는 친정어머니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언젠가 책에서 ‘한 여자가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그 뒤엔 자신을 희생하며 뒷바라지하는 또 한 명의 여자가 있어야 한다’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나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행여 딸이 일하는 데 지장 받을까 노심초사하는 나의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초등학교 1학년 손자를 학교에 데려다주시고, 숙제를 봐주신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 역시 아이 하나를 낳고나서 둘째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 수많은 직장 여성 중 한 명이기에, 쏟아지는 출산 장려 정책에 나름 관심이 많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건 뭔가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출산 장려 정책들이 대부분 아이를 낳으면 양육비를 지원해주는 쪽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출산 장려금을 지급하고, 저렴한 탁아소를 보급하고, 양육비를 보조해주고. 물론 이러한 정책들은 필요하기도 하고, 출산율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결코 충분하지 않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를 키울 때 핵심은 돈이라기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저녁 6시에 퇴근하고, 주말은 당연히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거나 학교 행사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필요할 때 조퇴를 할 수 있고,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2주간의 휴가를 가는 것 등이 당연히 여겨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선진국들을 보라. 부모에게 아이와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낼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고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가 과연 있는가? 이제 우리의 출산 장려 정책도 초점을 돈에서 시간으로 옮기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왜냐하면 아이는 결코 돈만으로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정말 우리 사회의 미래라고 믿는다면, 그들이 진정 사랑과 행복과 인간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아는 성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그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이 우리가 그렇게 고대하는 선진국이기를 바란다면 이렇게 계속 부모들에게 ‘시간’이 아니라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이는 돈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그리고 사랑은 예외 없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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