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 얻는 진정한 리더를 꿈꾸다
사람의 마음 얻는 진정한 리더를 꿈꾸다
  • 권지희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7.10 15:10
  • 수정 2009-07-10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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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비교분석’ 선덕여왕 vs 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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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다. 우리보다 더 많은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중국에서도 선덕여왕에 앞서 여왕이 탄생하지는 않았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인 측천무후는 선덕여왕보다 반세기 후에야 등장했다. 선덕여왕이 재위한 16년간 단 한 번도 민중봉기가 일어나지 않았고, 동양 최초의 천문대인 첨성대(국보 31호)도 그가 세운 것이다.

‘미실’은 색공지신(색공을 바치는 신하)의 신분으로 신라의 권력을 거머쥔 여성이다. 24대 진흥왕 때 29년 동안 폐지됐던 원화제도(여성이 화랑들의 대장이 되는 제도)를 부활시켜 군사권을 장악했고, 자신을 왕후로 삼지 않은 25대 진지왕은 즉위 4년 만에 폐위시켰으며, 25대 진평왕 때는 13세 어린 왕을 대신해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를 맡아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신라시대를 주름잡은 두 여걸이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만났다. 7일 현재 총 50부작 중 14부가 방송됐는데 같은 기간 국민 드라마 ‘대장금’의 시청률을 훨씬 웃돈다. 정반대의 리더십으로 사람을 모으고 권력을 쟁취해가는 선덕여왕과 미실의 대결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선덕여왕 즉위 당시 나이는 50세, 미실은 80세 정도로 추정된다. 드라마에서처럼 왕권을 두고 다툴 일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드라마 속 ‘설정’은 묘하게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화랑세기 등 역사서 속 ‘기록’과 맞닿아 있다.

다른 듯 같은 ‘포용의 리더십’

드라마 속 미실(고현정)이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사람을 모으는 기술에 있다. 미실은 적과 아군의 구분을 넘어 이기는 자, 천운을 가진 자를 자기 사람으로 끌어 모은다.

백제와의 전쟁에서 반대파인 김서현이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다. 김서현은 그 공로로 진골과 화랑의 신분을 되찾고, 병부령(설원공) 바로 밑인 대감 직위를 얻는다. 불안해진 설원공이 “김서현을 그냥 둘 거냐”며 조바심을 내자, 미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약 모든 정적들을 죽여서 해결했다면 설원공도 이 자리에 없습니다. 뛰어나고 필요한 자일수록 반드시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실은 적까지도 자기 사람으로 바라보고 또 그렇게 만드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반면 덕만(후일 선덕여왕, 이요원)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전쟁 속에서도 약자를 포기하지 않는 또 다른 ‘포용의 리더십’을 선보인다.

백제와의 전쟁에서 화랑의 지휘를 맡은 알천랑은 부상을 당해 싸울 수 없는 병사를 직접 칼로 베고, 자신도 죽이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덕만은 “어찌 동료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 하느냐”며 “부상병을 살리고 낭도도 모두 살릴 방법을 찾는 것이 지휘권자의 임무”라고 외친다.

“부상당한 동료를 제 몸처럼 업고 가기 위해 곡식 한가마니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 했습니다. 그것이 훈련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사기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사기를 친 사람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습니다.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충성심이 없는 자를 데리고는 하루에 1리도 가기 어렵습니다.”

덕만은 이 말 한마디로 반대파였던 알천랑을 움직이고, 낭도들의 마음을 얻는다.

이 시대 리더의 조건을 말하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땠을까?

책 ‘상처 입은 봉황 선덕여왕’(다산호당)의 저자인 김용희 단국대 교수는 미실이 권력을 장악해가는 방법으로 “색공으로 많은 아이를 낳아 권력의 요직에 배치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화랑세기’에 드러난 미실의 자녀들 중 여성은 대개 왕이나 풍월주(화랑의 지휘자)와 혼인했고, 남성들은 풍월주가 됐다. 자기 사람을 모아 권력을 장악했다는 점에서 드라마와 일맥상통한다.

김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권력을 획득한 미실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엄격히 적용되던 신분제마저 뛰어넘어 골품이 없는 천한 신분을 가진 문노를 아찬 이상의 진골로 승격시킬 만큼 막강했다”고 평가했다.

선덕여왕의 왕위 획득과 왕권 유지 비결도 역시 ‘사람’이다.

책 ‘우리 역사의 여왕들’(책세상)의 저자인 조범환 서강대 박물관 연구교수는 “선덕여왕은 대가야의 후손으로 주변부 인물이지만 군사력에 밀접했던 김유신을 발탁해 군사권을 장악했고, 왕권에 가장 큰 위협적 존재였던 김춘추(후일 무열왕)를 가까이 둬 안정적인 국정을 펼쳤다”고 평가했다.

선덕여왕이 드라마 속에서 보여주는 인간 중심 리더십도 역사적 사실과 유사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선덕여왕은 원년 10월에 홀아비와 과부, 고아 등 자립할 수 없는 자를 구제하는 등 왕위에 오른 후 10년 동안 어렵고 힘든 백성들을 위해 사회사업 정책을 펼쳤다. 일을 할 수 있는 자들에게는 일자리를 만들어주었고, 조세를 면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신라시대 왕들은 정권 초기 민심을 얻으려고, 또는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에만 구휼 활동을 했으나 선덕여왕은 재해가 없을 때도 한결같이 대민 구휼 활동을 펼쳤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선덕여왕의 정치를 높이 사는 이유는 그가 단지 최초의 여왕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 특유의 포용의 정치를 펼쳤기 때문”이라며 “이 시대의 리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점에서 선덕여왕의 삶에 대해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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