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민우회 여성노동권 확보를 위한 연속포럼 개최
"비정규 기간 확대되면 여성노동자 퇴출"

2009년 경제위기 속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이 사실상 강제된 것이지만 형식으로는 자발적 희망퇴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김원정 서울대 여성학 연구원은 2일 여성민우회가 주최한 ‘경제위기 속 여성노동권 확보를 위한 연속포럼’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연구원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진행됐던 사내부부 해고, 무차별적인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등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유효한 가운데, 여성 노동에 대한 현 기업의 양태는 이런 문제를 회피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위기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기업이 위기 이데올로기를 활용해 사용자 편의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다”며 “여성노동에 대한 차별이 더 교묘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 연구원이 여성민우회 상담 자료, 심층면접 사례, 노동연구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다. 김 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들에게 희망퇴직은 평소 육아나 가족 돌봄으로 갈등을 겪거나, 승진 문제 등으로 회사 내에서 비전과 전망을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나마’ 돈을 받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된다.

그는 “누적된 차별과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의해 조장되는 여성의 퇴직은 기업의 강제 대 개인의 자발이라는 기존의 구도로 설명할 수 없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해고’”라고 정의했다. 이는 희망퇴직을 초래하는 요인들이 개별 여성 노동자들이 속한 가족과 기업을 넘어 광범위한 사회적 차원의 문제들이 포함된 복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같은 현상으로 인해 “누적된 성별 불평등의 문제를 개인 차원으로 해소하면서 문제를 더 비가시화하고 해결을 지연시키는 기제가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퇴직을 결심한 여성 노동자가 받는 보상은 사실상 퇴직위로금뿐 그간 겪은 갈등과 어려움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보상은 어디에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노조와 남은 여성 노동자들은 이후 문제를 함께 해결할 주체들을 잃어버리고, 회사는 성차별적인 관행을 시정하지 않은 채 여성 노동자들의 ‘자발적’ 퇴직을 유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외관상 자발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들이 일터를 떠나고 있지만 이런 흐름을 차단하기에는 해결됐어야 할 문제들의 무게가 너무 크다”며 “경제위기를 통해 드러난 여성노동 담론 및 실천의 공백을 중장기적으로 메워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사무 정규직 여성, 다수의 비정규직 여성 등으로 범주화된 ‘일하는 여성’의 범위를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당장 현재의 경제위기 속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영세 자영업과 임시 일용직을 전전하는 여성들이 현 범주 안에 포함되지 못해 어떻게 일하고 살아가는지 가시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이밖에도 ▲누적된 성차별에 대한 일상적 대응 강화 ▲엄마 노동자를 지지하는 새로운 담론 형성 ▲회사 노조와의 협상력 제고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어 박주영 노무사는 비정규직법과 여성 노동자의 관계를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여성보다 남성 비정규직 감소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며 “여성 집중직인 서비스업도 오히려 비정규직이 더 늘고 KTX 여승무원, 이랜드 캐셔 외주화 등이 보여주듯 여성 노동자에 대해서는 비정규직법의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비정규직 기간이 4년으로 확대돼 유연화될 경우 여성노동권은 치명타를 입는다고 강조했다.

박 노무사는 “가령 한 여성이 20대 초 비정규직으로 취업해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면 8년간 정규직 기회가 상실되는데 그 시점에 여성은 결혼 혹은 임신 등의 가능성을 갖는다”며 “이로 인해 사용자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꺼려 상당수 20대 후반 여성 노동자들이 정규직 진입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만약 그 시점에서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면 사실상 노동시장 자체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아 여성들의 노동기본권이 심각하게 저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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