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여성의 유쾌한 라이프스타일
따로 또 같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적극 모색
의료서비스 제공하는 ‘의료생협’도 준비 중
결혼제도가 잘못됐으니 홀로 살아가겠다는 외침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를 모색하는 활동이다. 비혼운동 중심에 서있는 여성주의자들은 결혼하지 않은 형태로 다양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공유하고 축복해주면서 비혼을 ‘유쾌한 라이프스타일’로 정착시키고 있다.
결혼 중심 사회에 맞서 ‘비혼’임을 외쳐야 했던 여성들은 이제 각자의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다.
성산동의 한 빌라 301호에는 5명의 다섯 여자가 두 고양이와 함께 북적거리며 살고 있다. 식탁에서는 시사문제를 놓고 토론이 이뤄지고, 글쓰기의 괴로움이나 책읽기의 즐거움에 대한 대화도 열린다. 여성주의라는 공통된 감수성은 식구들을 묶어주는 또 다른 날줄과 씨줄이다. 스무 살 때 독립한 후 성산동 301호 일원으로 살고 있는 가온(28)씨는 “우리는 공동체이기도 하고 하우스메이트이기도 하고 식구, 또 가족”이라며 “매일매일 마음의 문을 여는 연습, 또 열린 마음을 닫지 않는 연습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연희동의 어느 301호에도 모여 사는 세 여자가 있다. 집안일도 각자 적당히 알아서 하고,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리며 장도 보고, 아프면 걱정하고 간호하면서 정성스레 서로를 지킨다. 가족의 일원인 어라(27)씨는 “혈연가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 이제는 비빌 언덕이자 자신감을 주는 든든함이 됐다”며 심정을 전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2007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비혼 여성 축제’를 열었던 언니네트워크의 새 책 ‘언니들, 집을 나가다’(에쎄)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같이 살지는 않아도 ‘주민들과의 관계 맺음’만으로 충만감을 느끼며 사는 비혼 여성들도 있다. 작가로 활동하며 홍대 인근에서 5년째 혼자 살고 있는 박혜리(30)씨는 “일상생활에서는 주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에서는 혼자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박씨뿐만 아니라 비슷한 생각과 공감대를 지닌 주민들은 “나만의 공간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자주 주민들을 만나 우리들의 아지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편하고 좋은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비혼자들은 자신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쾌하게 꾸려가고는 있지만 1인 가구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부족한 것은 여전히 문제점이다. 1인 가구 수는 점점 증가하지만 올해 주택 공급은 오히려 20만 가구가 감소했고, 내 집 마련 과정에서도 여러 제약을 받고 있다.
하지만 비혼자들에게 포기는 없다. 비혼 여성들 사이에서 ‘여성주의 의료생협’이 꾸려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비혼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다 좋은데 아프면 어떡할래?”는 피하기 어려운 관문이다. 결혼 상태가 병으로부터 보호막이 되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비혼 여성들은 건강 부분에서도 서로 보호자가 될 것을 약속한다. 그렇게 꾸려진 것이 올해 1월 1일 준비 모임을 가진 ‘여성주의 의료생협(가칭)’이다.
이 모임은 3년 뒤 의료생협 출범을 목표로 월 1회 정례회의와 세미나, 소식지 발간, 홍보작업을 통해 내실을 다져가고 있다. 300명의 조합원과 3000만 원의 출자금을 갖춰 여성주의 생활 공동체 겸 의원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모임을 꾸려가고 있는 무영씨(가정의학과 전공의)는 “비혼 여성들이 공동체를 꾸려 나이 들어서까지 잘 살 수 있으려면 서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플 때 돌봐줄 수 있는 계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의료생협의 사업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