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여성 기자의 ‘행복한 혼자 살기’

스물세 살 때의 독립을 기점으로 시작된 내 비혼 인생은 사실 ‘결혼의 상대화’가 아닌 ‘결혼 거부’였다.

안톤 체호프는 ‘외로움이 두렵다면 결혼하지 말라’고 했고, 페미니스트 ‘왕언니’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결혼은 외로워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한 것을 빌려 결혼지상주의에 젖어 있는 대한민국을 비판했다. 낭만은 짧고 인생은 길다. 고로 현실을 위해 낭만의 함량을 줄이는 것이 ‘결혼’이고, 낭만을 위해 현실의 함량을 늘이며 사는 것이 ‘비혼’이라 생각했다.

이 굳건한 비혼 인생에 늘 ‘연애’는 속해 있었다. 그러나 지난 모든 연애사에서 늘 결혼문제가 발생했다. 20대 여자아이의 비혼 선언은 치기 어린 청춘의 구호라고 생각한 것일까. “혼자 사는 거 힘들지 않아?”라는 공통된 언술로 결혼을 갈구하던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나와의 이별 뒤 새 여자와 웨딩마치를 울렸다.

그렇게 이별을 겪을 때마다 비혼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난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 더 좋은 보금자리를 찾아 이사를 하는 것도, 내 힘으로 온전히 내 인생을 책임지고 있다는 뿌듯함도, 진짜 행복을 위해 남자들과의 결혼 협상에 불응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행복’이었다. 세상 어디서든 사회적 투쟁은 단 한순간도 휴식을 허락하지 않기에, 비혼을 둘러싼 편견에 맞서 싸우는 일은 삶의 과제로 받아들인 지 오래다. 오히려 연애과정에 있을 때 난 행복하지 않았다. 

결국 남은 문제는 하나였다. 연애가 실패로 돌아갈 때마다 패배감에 젖어야만 하는 아이러니의 극복. 하지만 이 역시 관성에 젖은 채 좌충우돌했던 20대와 이별을 고하고 있는 덕분인지 해결책을 찾았다. 바로 결혼도, 연애도 아닌 동반자 관계 구축이다.

홍대 주민인 나에게는 이 동반자 관계에 놓여 있는 이들이 희망이자 대안이다. 레즈비언이 아닌 두 여자가, 게이가 아닌 두 남자가, 혹은 성별에 상관없이 가족, 연인, 친구, 동료를 모두 포함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다양한 비혼 상태의 홍대 주민들을 통해 답을 얻은 것이다. 그들은 집을 함께 구해서 작업장으로 쓰기도 하고, 동업자로 함께 일을 하기도 하고, 어느 연인 못지않게 여행도 다니며 자신들만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나 또한 지척에 늘 있는 그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희로애락을 나누며 또 다른 관계망을 구축해가고 있다.

비혼 여성들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꾸리고 의료생협까지 준비하고 있는 이 시대적 흐름에 맞춰 나도 한국 사회에 ‘시민연대계약’ 추진 계획을 세우려 한다. 주례도 증인도 필요 없이 단 두 사람만의 합의에 기초하는 이 계약은 이미 프랑스에서 수많은 비혼자들이 선택한 방법이다. 파기할 때도 굳이 합의가 필요 없고, 합의가 안 됐을 때도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만으로 가능하다.

책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의 목수정 작가도 행복은 사회 속에서 쟁취하고 학습하며 전이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가장 좋아하는 전경린 작가의 글귀를 다시 한 번 적어본다. 사랑보다 뜨거운 자유를 나눌 수 있는 더 많은 동반자들을 기다리며.

“많이 헤매고 괴로워하고 들끓었고 넘어졌지만 나는 아직 지지 않았으므로. 그리하여 머지않아 삶은 나의 것이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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