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이 아니면 적’…극단적 이기주의 버려야
공동체 의식 넓혀가야…사회적 차원 대안도 필요

“아무도 믿지 마, 엄마가 구해줄게.”

최근 논란을 일으키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마더’의 광고 카피이자 관객이 뽑은 영화 속 명대사다. 이 대사는 ‘내 가족’ 외에는 모두가 ‘타인’이자 ‘적’인 한국 특유의 가족이기주의와 그에 따른 책임을 짊어진 ‘엄마’의 비극을 함축한다. 또 영화 속 마더는 살인 혐의로 구속된 아들에게 “(살인을 했더라도) 말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며 아들을 위해 다른 집 아들이 피해자가 되는 상황을 묵인한다.

이 같은 ‘마더’는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예외적이고 특별한 엄마일까?

김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대표는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관람기를 통해 “(만약 나였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영화 속 마더와 비슷한 행동을 했을지 모른다”며 씁쓸한 감상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교육 광풍에 휩싸인 엄마들과 자식의 무죄를 밝히려고 홀로 고군분투하는 영화 속 마더가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복부인, 원정 출산, 강남 8학군 벨트, 헬리콥터 맘 등 정작 자신의 이름은 잊은 채 공공성을 해치는 부정적인 이름으로 질타당하는 엄마는 가족이기주의의 첨병이다.

하지만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가족이기주의는 다르다. 한국 특유의 끈끈한 가족주의는 역사적 굴곡이 많았던 한국 국민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지난 시절 단결과 희생을 필요로 했던 산업발전의 원동력이자 그 부작용을 완화하는 ‘유일한’ 안전장치도 모두 가족의 몫이었다.

이처럼 각 가족이 각개약진 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한국에서 엄마는 가족을 위해 투사가 돼야 했고,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가 사회 분위기를 이끌면서 가족이기주의도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저서 ‘가족주의는 야만이다’를 통해 “국가가 수행해야 할 공적 책임이 가족에게 전가되는 곳에는 가족이기주의가 당연히 발생한다”며 “특히 외환위기 이후 더 벌어진 빈부격차 속에서 사람들은 가족이기주의에 더 매달려야 했다”고 분석했다.

즉 가족주의가 국가, 가족, 개인이 각각 해야 할 역할의 경계를 흐리며 정부의 책임회피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됐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어쩌면 가족이기주의는 필연적 결과로 ‘내 자식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엄마의 절박한 심정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김씨 또한 관람기를 통해 “공공성과 배려가 실종되고 약자에게 무관심한 승자 독식의 한국은 유난히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은데 그 책임은 주로 ‘마더’의 몫”이라며 “내 자식 위하는 데 선악이 있느냐는 항변에서 벗어나 상식적으로 마더 노릇을 해도 되는 세상이 아직 멀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사회가 공공 부조를 개인에게 전가시키고 사회복지를 담당하지 못할 때 사회는 연대가 사라지고 패거리주의가 기승을 부려 민주주의의 기반까지 흔들리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들이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건 가족과 사회가 유기체임을 인식하고 공동체 의식을 넓혀가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나가기 위해선 사회적 차원의 대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가족으로서 누려야 할 각 시민의 권리를 국가에 요구하며 ‘사회’라는 울타리를 수립하자고 제안한다.

가족 외에는 나의 생존과 꿈을 지켜줄 곳이 전무한 ‘가족 사회’를 넘어 ‘시민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만연한 ‘어머니 열풍’이 보여주듯 여전히 한국 사회는 가족에게 많은 것을 부탁하려 한다. 이에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최근 출간한 저서 ‘어머니 수난사’에서 “각개약진의 사회 체제에 변화를 주기 위한 틀이 국가 정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발상 자체를 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과 둔감이 진정한 비극”이라고 꼬집었다.

사회구조 변화에 발맞춰 시민 사회로 나가기 위해 이젠 국가에 가족의 부탁을 들어줄 차례임을 반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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