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의 현실은 ‘조용한 학살’

이는 지난 5월 전년 동월 대비 전체 취업자 감소분의 96%가 여성인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제기된 분석이다. 경제 위기에 따른 고통과 희생이 여성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치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거론조차도 되지 않아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개선과 함께 여성노동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여성계의 공동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사회적 관심도 대책도 없는 여성노동의 현실을 ‘조용한 학살’로 진단하고 성인지적 일자리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윤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경제 위기는 30대, 저학력, 비정규, 일용직, 자영업, 영세 소규모 서비스 사업장 등에서 종사하는 여성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었다.

그는 “1998년 외환위기 강풍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20대 여성들이 10년 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또다시 가장 타격을 받은 집단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이들은 질 좋은 일자리에서 배제되다 보니 고용보험 등의 사회안전망에서도 벗어나 자연스레 빈곤의 굴레로 빠져들게 된다. 윤 연구위원은 “경제 위기의 주요 피해자를 정확히 타깃팅 하지 않는 대책이 여성을 고용과 빈곤의 시각지대에 남겨두고 있다”며 “양성을 동등하게 보호하는 사회안전망 구축 등 성별 고용 상황을 고려한 성인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 위기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여성노동이 거론조차 되지 않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여성사회권 지표 개발, 연1회 여성 취업 심포지엄 개최 등을 통해 여성노동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긴급하다”고 지적했다.

권혜자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도 “여성 노동자의 빈곤이 개별화, 은폐되고 있음에도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세력이 결여됐다”며 “고용정책은 1995년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을 준수하는 것부터 출발해 성별영향평가 등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윤 노동부 여성고용과장은 “상용직으로 일하면서 승진도 하고 복지 혜택도 받으며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질 좋은 단시간 일자리’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으며, 홍희덕 민노당 의원은 사회안전망 마련을 위한 ‘전국민고용보험제’를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 앞서 민생과 일자리를 살리기 위해 발족식을 가진 ‘생생여성행동’은 이후 경제 위기에 따른 여성 해고에 대한 간담회 및 실태조사를 진행하며 부당 해고에 대한 법적 소송에도 나설 방침이다.

생생여성행동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노동 단체 49개가 모여 구성한 연대 기구로 ‘잘릴 걱정 없는 여성일자리 50만 개 만들기’ ‘돈 걱정 없는 공교육 만들기’ ‘먹고살 걱정 없는 살림살이 만들기’ 등 3대 핵심 과제 해결을 위한 정책 요구와 캠페인 등을 펼칠 예정이다.

한편, 교착상태에 빠진 비정규직법 해법과 관련해 3당 여야 간사들이 노동계가 참여하는 연석회의를 구성키로 합의해 비정규직법 처리에 대한 실질적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