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라는 시대적 현실감 담아
어린 시절 전쟁으로 인해 처참하게 파괴된 건물의 잔해나 이를 재건하는 등의 모습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시골 마을에서 성장했기에 파괴된 공장의 시멘트 벽이나 철근 그리고 철판에 대한 강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콘크리트와 철판 덩어리의 호화스런 시각적 유희를 제공하려 한다. 마치 위로나 하는 듯, 하지만 그 덩어리 자체는 철저하게 거부한다. 아니 냉정하리만치 관심조차 없다. 나는 그 표정에 찬사를 보낸다.” -작가노트 중에서-
그의 조각은 산업화시대라는 현대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시멘트와 철은 현대를 대표하는 산업 재료로 건설이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환경적으로 볼 때는 자연 파괴적인 성격으로 어두운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전쟁으로 인한 분단의 아픔을 상징해내듯 그의 조각은 이름 없는 도시의 기념비처럼 한민족의 마음속에 폐허의 상징물을 남겨주는 듯하다.
자유로움으로 미래를 제시하다.
문인수의 기억 속에는 과거의 부서진 집과 함께 새롭게 건설되는 상반된 풍경이 뇌리에 남아있다. 그의 기억은 파괴로부터 창조라는 강인한 힘을 얻어내고 있다. 역사나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파손되어짐이 또 다른 창조를 야기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가 표현해내고 있는 철판이나 철근콘크리트 등이 어우러져 하나의 커다란 형태로 통합되는 경우도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철근이나 철판, 콘크리트, 볼트, 너트, 관통된 구멍, 낙서 등 저마다의 형태로 각기 다른 표정을 나타내며 서로 어우러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조각적 구성은 균형이라든가 비례를 거부하면서 지속과 단절, 규칙과 불규칙 그리고 매끈한 면과 거친 면의 대비적 관계를 꾸준히 유지한다.
그의 작품은 매끄럽게 절단된 면들이 간혹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거친 잔해의 표면들로 무표정하게 나타난다.
주로 철이나 화강암 그리고 철근 콘크리트와 같은 현대적 건설 현장에서 쓰이는 소재들로 차갑고 거친 기념비처럼 육중하고 무겁다. 기쁨과 슬픔 등 감정이 배제된 응축된 덩어리는 오히려 강건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콘크리트의 빛바랜 회색톤 위에 철판의 짙은 갈색, 콘크리트 밖으로 삐져나온 철근이나 철사 토막, 볼트 나사 등은 단조로운 구성으로부터 회화적 악센트를 준다.
그의 조각은 야외조각의 개념이 강한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전달에 충실함을 보인다. 그러다보니 주변 환경과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지만 오히려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경향도 있다. 이는 예술적인 힘으로 보기보다는 재료가 주는 친근함과 소재 선택의 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작품이란 모든 요소를 압축시키고 있으며 모든 것이 구속되어 있다. 작업에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로움을 터득하게 되는 순간 작가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서정성과 정적인 고요가 담겨 있는 그의 조각은 너무나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현-률’(現-律)과 ‘문’(門)이나 ‘성’(城) 등의 작품은 구체적 형상의 연작으로 현실적 시대 상황과 인간의 실존문제를 상징화한다.
문인수는 전통적인 미술양식이나 한국현대미술의 어느 한 유형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개척해내고 있는 작가다.
그는 현 시대의 유행에 편승된 장식적 표현을 거부하고 수평적 안정감과 수직적 상승감이 조화를 이룬 시대적 상징 조각으로 현대라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1955년 서울생.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1984년, 1985년 연이은 특선 2회와 1986년에는 시멘트와 철을 주로 사용한 작품 ‘집률(集律)’로 대상을 수상했다. 1987년 바탕골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서울, 파리 등지에서 9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1993년 파리에서 가진 개인전을 계기로 프랑스 외무부와 세계예술센터에 초청되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이며 김세중 청년조각상, 토탈미술관상을 받았다. 현재는 한국미술협회와 한국 현대조각회의 회원이며 수원대학교 미대 조소과 교수로 학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