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갈등’을 ‘분열·대립’으로 해석하지 말라
‘차이·갈등’을 ‘분열·대립’으로 해석하지 말라
  • 이상화 /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09.06.19 10:48
  • 수정 2009-06-19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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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정치’가 국민 통합 이끌어낼 열쇠
6월 3일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으로부터 시작된 현 정부의 반성과 쇄신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은 2주가 지난 현재까지 멈추지 않고 각계각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성계에서도 6월 16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2009 여성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에는 “민주주의, 인권, 평화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2009명의 여성들”이 각자의 이름과 소속을 밝히고 동참했다. 여기서 ‘2009’라는 숫자는 2009년 현재 한국 사회의 현주소에 대한 문제의식과 진단을 상징한다. 

시국선언의 물결의 단초가 된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발표되고 그 파장이 확산되자 한 대학의 총장은 “교수 124명의 시국선언이 구성원 전체의 의견은 아니며 의견을 달리하는 교수도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사실상 어떤 선언문도 전체 국민의 이름으로, 혹은 전체 구성원의 이름으로 발표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선언문에 서명한 사람들의 의견이 구성원 전체의 의견이 아니고 다양한 의견 중 하나라 할지라도, 그 의미와 가치가 폄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전체가 아닌 일부의 사람들이 함께 의견을 표출하는 행위가 결코  민주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국론 분열과 사회혼란의 원인으로 이해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는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차이와 갈등을 분열과 대립으로 바라보는 부정적 관점에 기인한다. 이러한 관점은 서울광장 사용을 둘러싸고 시민(시민단체)과 갈등을 빚고 있는 정부와 서울시 당국의 대응 방식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둘러싸고 시민들의 집회를 원천봉쇄하거나,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압하는 정부의 대응방식을 어떤 논객은 ‘정부의 광장 공포증’이라고 진단한다. 정신의학적 의미에서 광장 공포증(廣場恐怖症 agoraphobia)이란 강박신경증(노이로제)의 일종이다.

노이로제는 어떠한 욕구가 의식의 표면으로 표출되는 것을 억압하여 무의식으로 밀어넣는 대신 의식에서는 그러한 욕구의 대체물로 피해망상이나 심리적 공황이 나타나는 병리적 증상을 말한다. 우리 사회의 경우 특이한 것은 공포를 느끼는 것이 광장에 나간 시민 당사자들이 아니라, 시민들이 광장에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부 당국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보면 정부의 ‘광장 공포증’이라는 은유가 의미하는 바는 비판에 대한 두려움, 즉 ‘차이에 대한 두려움’에 다름 아니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들은 현 정부의 국정수행 방식의 강압성과 일방성, 그리고 비민주성을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드러나는 일련의 사태에서뿐 아니라,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자유로운 의사 발표와 요구에 뒤따르는 불이익, 우회적인 위협과 직간접적 탄압의 다양한 양태들로 사회 도처에서 생생하게 체감하고 있다.

예컨대 현 정권의 국정수행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부 단체들이 정부 보조금 지원이나 선정에서 제외되고 감사의 대상이 되는 현실 등은, 정부의 보복적 대응이자 표적 감사라는 의구심을 강화한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두산백과사전)이라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은 독재나 전제정치처럼 사회 구성원 전체가 동일한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일사분란하게 국가정책을 따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양하고 풍부한 의견의 차이들을 자유롭고 개방적인 절차와 과정 속에서 표현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점점 제약되는 이 시국에, 우리는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와 타당성을 찾을 수 있다.  

배제와 보복의 정치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의견의 차이와 갈등을 대립과 분열로 치닫게 할 뿐이다. 국민적 통합은 차이를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동시에 차이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소통의 정치를 통해서만 실현 가능하다.

이러한 수많은 선언문에서 강조되는 이 원론적인 말을 여기서 다시 되풀이해야 되는 현실 자체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징조와 무관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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