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 생산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지식인들의 여론 조작’이라는 글에서 ‘노블랑그’라는 말을 소개했다.

노블랑그(noble langue)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조어로, 지식인들이 애매한 표현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단어로 세계화, 유연성, 공동체, 다문화 사회 등을 들고 있다. 노블랑그란 근본 문제는 숨긴 채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하여 전달하는 표현을 말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도 양성평등과 관련된 노블랑그가 유포되고 있다. 해마다 증가하는 여성들의 국가고시 합격률이 원인이 되었다. 지난해 여성들은 행정고시 51.2%, 외무고시 65.7%, 사법시험 38%의 합격률을 보였다.

그러자 거의 모든 언론에서는 ‘여성천하’가 이미 되었다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었고, 여성에 대한 집단적 차별이라는 이유로 폐지되었던 군 가산점제를 하루속히 부활시켜 여성의 지나친 공직 진출을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도 힘을 얻기 시작했다. 국가고시의 경우 군 가산점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험임에도, 시험을 잘 보는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를 은근히 자극하는 모양새로 보도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인 고등교육의 기회를 얻은 지 100년도 되지 않은 여성의 높은 고시 합격률은 충분히 놀랄 만하나, 원래 여성들은 시험에 강하다는 통설도 있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공부를 잘하는 이유로 성별에 따른 역할 분담을 들기도 한다. 원래 어머니는 자녀를 교육하는 양육자의 역할을 맡다보니 학습에 더 열심이라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2008년 행정안전통계연보’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의 여성 공무원 비율은 29%이지만, 4급 이상 관리자의 비율은 6%다. 3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은 0.9%(고위공무원단 885명 가운데 여성은 8명)에 불과하다. 중앙부처는 100명당 1명꼴이고, 지방자치단체에는 여성 고위직 공무원이 전혀 없다.

매년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발표하는 여성들의 정치·경제 분야에서의 참여 정도를 나타내는 여성권한척도에서 우리나라는 68위이며,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56개국 중 82위, 여성 장관 및 각료 비율은 156개국 중 132위다. 고시 합격률의 남녀 비율이 역전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여성의 높은 합격률이 공직자의 남녀 직급 비율에 반영되는 데는 시차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여성천하’라는 말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노블랑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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