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시인과 함께 대표되는 저항문학의 상징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중에서)”
고정희 문학캠프 팀은 둘째 날 일정이 있던 지난 6월 6일, 고정희 생가를 들러 문화제를 열기 전에 김남주 시인 생가를 들렀다. 이영주(또 하나의 문화 사무국)씨는 “시인마을이라 불리는 해남에 온 청소녀들의 10대 문학 감수성도 높이고 고정희 시인 외에도 다른 시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프로그램에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김남주기념사업회’가 주축이 돼 매년 ‘김남주 문학제’를 개최하는 방법으로 김남주 시인을 기리고 있다. 9회 문학제가 열렸던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시인 생가에서 행사를 열어 나해철·홍일선·박희호·강상기 등 다양한 문인과 예술인들이 참가했다.
생가에서는 시인이 생전에 읽었던 책들을 가지런히 모아놓은 서재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김남주 시의 출발점이자 창작의 산실이었던 감옥을 재현해 놓은 공간도 있다. 김남주 시인은 두 차례에 걸쳐 10년 세월을 감옥에 갇혀 있었으며, 그가 남긴 470여 편 시 가운데 300여 편이 옥중에서 쓴 시다.
“이제 나는 쓰리라/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언어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어린아이가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행동/ 아장아장 걸음마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김남주 시 ‘조국은 하나다’ 중)”
고 김남주 시인은 1945년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태어났으며, 197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잿더미’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대학 시절부터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10년 남짓 옥고를 치르면서 췌장암으로 1994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 등의 시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