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정희 캠프 여는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
[인터뷰] 고정희 캠프 여는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
  • 채혜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6.12 10:44
  • 수정 2009-06-12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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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의 시를 참 좋아합니다"
‘고정희 문학기행’ 공간 제공…어린이 한문학당도 열어
삶에 지쳐 땅 끝 절 찾아온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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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고정희 문학캠프가 시인의 고향 해남에서 성황리에 진행되어 온 데는 달마산에 안겨 있는 절, 미황사의 역할이 크다. 한반도 최남단 땅끝마을에 위치한 미황사는 매년 6월 고정희 문화제 기간에 특별 개방된다. 물론 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템플스테이를 통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지만, 해남시인 고정희를 기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청소년 참가자들을 위해 6월에는 절 곳곳이 개방 공간이 된다.

이는 미황사의 주지스님인 금강스님의 의지 덕분에 가능한 일이 됐다. 금강스님은 2002년부터 고정희 시인과 관련된 행사에 흔쾌히 공간을 내주었다. 100명이 넘는 청소녀들이 3일 동안 머물면서 시끄럽게 굴거나 절에서의 예의를 지키지 않아도 스님은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돌본다.

“문학캠프 기간 동안 시끄러워지는 건 사실이지요, 허허. 하지만 소녀들과 함께 예불도 드리고 걷기명상도 하다 보면 마음이 참 좋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글을 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좋고요. 고정희 시인을 생전에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의 시를 참 좋아합니다.”

금강스님은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참사람의 향기(참선수행), 산사음악회 등 프로그램을 꾸려 미황사를 사찰 프로그램의 메카로 만들어온 인물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어린이 한문학당도 스님의 부지런한 성품으로 이어져왔고, 스님을 만나러 온 불자들을 위해 하루에도 수차례의 찻물을 끓인다.

이명숙 고정희기념사업회 이사는 금강스님을 ‘해남을 넘어 모두의 든든한 지지자이자 버팀목’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매년 고정희 시인 행사를 준비할 때마다 무엇을 도와주면 되는지, 어떤 역할을 하면 되는지 늘 먼저 물어보고 도와주신다”며 “해남 여성들뿐만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지지와 힘을 실어주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오히려 해남 여성 활동가들 덕분에 새로운 일을 많이 하게 됐다고 답했다.

지난 2003년에는 학생이 줄어 폐교 위기에 처한 미황사 아래 서정분교를 학부모들과 함께 살리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 결과 서정분교는 100% 자율 운영되는 학교 도서관도 세우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모범 시골학교’로 자리 잡았다.

금강스님은 올해 문학캠프 참가자들에게 무엇보다 ‘걷기명상을 통한 마음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웠다. 매일 새벽 4시 예불을 마치면 스님은 함께 걷고자 하는 이들과 부도전 산책길에 나선다. 부도전은 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석조물을 말한다.

“눈, 코, 입, 귀와 피부, 마음의 빗장을 다 열어놓으라. 이렇게 오감을 다 열고 현재 순간에 집중하라.”

동백나무 숲길에서 야생 꽃에 맺힌 새벽이슬을 보며 스님은 “나라는 개념을 지우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말했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상처를 내는 일과 같아서 많은 이들이 ‘나’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게 되어서, 수행 공간인 절과 숲길을 걷는 일 모두가 마음공부에 속한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1989년부터 손수 돌을 나르고 굴삭기를 운전해 대웅전과 응진전 외에 흔적만 남아있던 누각들을 복원해 ‘지게스님’이라는 별명도 지닌 금강스님. 스님은 삶이 힘들고 일상에 지쳐 땅 끝에 찾아온 이들을 오늘도 따스하게 반긴다. 

“땅끝이 유명해서인지, 내가 사는 절이 유명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인생의 막다른 길을 만나 땅끝이라는 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진다. 오래도록 역사의 변두리로 취급되던 땅끝이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땅이 되었으니 아이러니하다. 훌륭한 인심과 아름다운 자연에 깨어있는 마음을 더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스님 글 중에서)”

미황사에서 금강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길이 끝나는 곳에서 한 시대가 오고 있음을 눈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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