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죽음은 순도 높은 정치적 행위
그의 죽음은 순도 높은 정치적 행위
  • 김영옥 / 전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 승인 2009.06.12 10:17
  • 수정 2009-06-12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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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했던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상실을 경험케 해
살아남은 자는 슬픔 거두고 작은 변화부터 이뤄내야
노 전 대통령 죽음 소식을 접한 그날부터 국민장이 이루어지는 시간까지 깊은 슬픔의 바다에 잠겨 살았다. 깊디깊은 슬픔의 해저 속에서 유영한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묘한 투명함을 경험했는데, 고대 희랍 비극에서 흔히 ‘정화’라고 부르는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내 애도가 그러나 이토록 투명한 걸러짐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슬픈 국민’의 집단적 애도 속에 자연스럽게 합류했기 때문이다.

지난번 김수환 추기경 선종 때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슬픔과 이번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촉발한 500만 국민의 슬픔 사이에는 구조적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후자가 훨씬 더,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에서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영 찾아보기 힘든 ‘큰 어른’의 상실을 경험했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 사람들은 한국 역사에서 영 찾아보기 힘든 ‘실재했던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상실을 경험했다. 아아, 그 이념은 얼마나 빛났던가. 제도로 뿌리내리고 일상에서 맛볼 수 있었던 그 이념의 속살은 얼마나 달콤했던가. 그러나 우리의 기쁨이 참으로 섣부르고 무책임했음을 날이면 날마다 일깨워주던 새 정부의 ‘친절함’. 그 친절함에 강타당하며 자기혐오를 닮은 무기력증과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결기 사이에서 갈등하던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맞이해 어떤 ‘순간 정지’의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스스로 선택한 ‘자유의 죽음’, 즉 순도 높은 정치적 행위였기에 그 죽음의 호소에, 그 죽음을 부른 고통에 감응하는 국민들의 방식 또한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원망하지 마라’는 소통의 의지에 인도된 이 정치적 애도는 현 정부가 자신의 일천한 정치 이해로 철저하게 오해하고 있는 불온세력의 불순한 시위, 책략 뭐 이런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이것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자매애의 아름다운 이념을, 밥 먹고 학교 다니고 돈 벌고 TV 드라마 보고 음악 듣고 연애하고 애 키우고 차 마시며 수다 떠는 바로 그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 속에서 실현하고 맛보려는 의지의 차원을 가리킨다. 그래서 숭고하지도 비장하지도 않지만 그만큼 더 고귀하고 필연적이다. 

오늘도 우리는 유치찬란한 막장 드라마를 일용할 양식으로 배급받고 있다. ‘슬픔에 잠긴 국민’ 앞에서 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나는 정치는 모른다. 그저 경제 살리는 일에만 매진하겠다’이고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문화예술위원장에 이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까지 사퇴시킨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은 자전거를 타고 거만하게 예종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일인시위 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훈계하고 있다. ‘누가 또 학부모를 세뇌시켰지?’라며 막말을 하다가 ‘딸이에요? 아들이에요?…거 봐요. 잘못된 과를 다니니까 그런 거예요’라고 비웃는다.

이럴 때 공손히 자전거에서 내려와 악수라도 청하며 ‘따님이세요? 아드님이세요?’라고 물어야 된다는, 이미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습득한 예의범절을 그에게 가르칠 수는 없으리라. 정치를 모른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는 모르고 ‘경제만 아는’ 이들이 문화는 알겠는가. 예의범절은 더더군다나 이들에게 기대할 바가 못 된다.

그리고 이들이 잘 안다고 장담하는 ‘그 경제’는 또 어떤 경제일까.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 출범식에서 “어려운 때일수록 결혼 일찍 하고 애 많이 낳는 것이 재산”이라고 설파하는 대통령 부부. 분명한 것은 도지사와 면담 한 번 하기 위해 60~70대 여성들이 알몸 시위를 해야 할 정도로 현 정부가 오만한 정부 관료들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여정부 시절 국고지원을 받은 문화예술단체 400여 군데를 감사할 정도로 행정감사와 감찰에 온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정치는 모르고 경제는 아주 독특하게 알고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이다.

‘슬픈 국민’이 깊은 통곡 뒤에 그 정화된 마음으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과연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저들이 아닌 우리에게 있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한 일 하나. 주로 조·중·동에 광고를 싣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소비자 운동에 적극 동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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