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 한두 번은 “남성 페미니스트는 없어요?”라는 학생들의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러면 서양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존 스튜어트 밀이나 ‘남성 페미니즘’의 논문, 혹은 동료 교수들의 페미니스트 연구물에서 남성 페미니즘의 예를 소개한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을 어떻게 사유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고민이 담겨 있을 것이다. 남성의 페미니즘도 성차별과 가부장제도에 대한 비판에 바탕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페미니즘과 다르지 않겠지만, 남성사회를 자기비판한다는 점에서 높은 수준의 자기 성찰 내지 검열을 수반하는 ‘불편한 자기 해부’이리라 생각한다.

때론 동료 남성과 남성사회에 대한 ‘내부 고발자’의 역할도 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타자화되어 왔던 여성들을 ‘읽을 줄’ 아는 감수성을 갖추고, 공적 영역에서의 동반자로 여성을 인정하는 남성이 되기를 요청받는다는 점에서 남자의 페미니즘은 여자와는 조금 다른 과제를 가질 것이다.

남성 섹슈얼리티의 표출은 자칫 성폭력과 성희롱에 해당하도록 구성되었다니 성적 주체로서 남성은 어떻게 거듭나야 할까. 부부재산제도에서 재산분할이 형평분할로 바뀌는 추세에서 남성의 경제부양 책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남자만이 강건하여 군복무에 적합한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이 제기된다. 실제로 남성만의 군복무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사건이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고, 제대군인에 대한 보상책 마련에 국회가 부심 중이다.

현재의 한국 남성들(과 그 부모들과 그 국가)은 가부장적 남성상의 수용도 아니고, 여성을 동료로 받아들일 수도 없는 남성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앞으로는 남녀가 동료 관계를 형성하는 진정한 양성 공존의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가족 상담자 남성, 기업의 총수 여성, 보살핌 노동자 남성, 기계 정비사 여성과 같이 진정한 ‘혼성’ 사회가 도래하길 기다린다.

기존의 조직 원리를 따르지 않고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주체 양성을 위해서는 남성의 교양교육에서도 페미니즘이 필수적이 아닌가. 지독히 ‘남성적’이면서도 여·남의 경계를 넘어선 ‘남성,’ 자기 개성에 충실하기에 남성이 수천 개의 젠더 중 하나가 되는 소문자 ‘남성’ 시대는 언제 올 것인가. 신여성 이후 ‘신남성’의 등장이 너무 늦어 한국의 여남 관계에 어긋남이 계속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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