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교실서 ‘품행 제로’ 일상화
‘큰 소리로 휴대폰 통화’ 꼴불견 2위

지난 주말 모처럼 연극을 보기 위해 대학로 소극장을 찾은 홍미영(30)씨는 시종일관 불쾌한 감정으로 공연을 관람했다. 연극 시작 전부터 휴대전화 전원을 꺼달라는 주최 측의 계속된 당부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받기 위해 공연 중 수시로  드나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어떤 이는 배우와 주변 사람은 아랑곳없이 통화를 시도해 공연 분위기를 망가뜨렸다.

휴대전화 기술은 세계 선두를 달리는 데 반해 사용자의 ‘품행 제로’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

공연장은 물론 학교, 도서관, 지하철 등의 공공시설에서의 잘못된 휴대전화 사용은 소음공해를 넘어 폭력으로 번지기도 한다.

게다가 휴대전화 기술의 발달로 MP3, DMB TV까지 활용할 수 있어 이어폰을 끼지 않고 볼륨을 높인 채 이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오히려 피해가 확대되기도 한다.

실제로 취업 포털 커리어가 2030 직장인을 대상으로 ‘출근길 꼴불견 유형’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위 ‘밀치는 사람(65.5%)’에 이어 ‘큰 소리로 휴대전화 통화하는 사람(58.2%)’과 ‘이어폰 밖으로 들릴 만큼 음악을 크게 듣는 사람(50.0%)’이 나란히 2, 3위에 올랐다.

또 국내 최대 온라인 영화 사이트 맥스무비가 네티즌을 상대로 ‘극장 내 휴대전화 에티켓’에 대해 조사한 결과, 94.4%가 영화관에서 휴대전화 때문에 불쾌했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93.98%는 영화관 휴대전화 예절이 미흡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잘못된 휴대전화 사용의 폐해는 다양하다. 서울대 의대생 기말고사 휴대전화 커닝, 대학 수능 부정, 병원 내 휴대전화 사용, 치마 속 몰래 카메라 찍기 등 때와 장소, 상대 등을 가리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초등학생에게도 휴대전화가 일상화됨에 따라 교실에서 휴대전화를 놓고 벌이는 전쟁이 치열하다. 지난 3월 관악구의 한 고교에서는 교사가 수업 중 문자를 보내는 학생을 제재하자 이에 반발한 학생이 교사에게 욕을 하며 나가버린 일이 발생했다. 학교 측은 휴대전화 사용이 학습권을 침해한다며 사용을 규제하지만, 학생 측은 학습에 필요하며 유괴 등의 범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맞서 양측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정부가 나서서 극장, 학교, 은행 등 특정 공공 지역의 휴대전화 통화 차단 법제화를 검토 중에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보람상조가 수도권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무덤 속까지 가져가고 싶은 부장품 1위’로 휴대전화(36.8%)가 꼽혔다. 그 이유는 ‘죽어서도 이승에 남을 가족과 통화하고 싶어서’가 가장 많았으며, ‘휴대전화가 일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뒤를 이어 휴대전화의 ‘위상’을 보여줬다.

이렇듯 높아진 휴대전화의 위상에 따라 기술이 비례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사용 문화만 정체된 현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가 한창 보급되던 2000년 초 진정한 정보기술 강국을 위해 범사회적인 에티켓 운동이 전개됐지만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국보다 휴대전화 사용 범위가 더 다양하고 일상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선진적인 휴대전화 문화로 유명한 일본에서는 휴대전화 사용 예절은 강제로 규제하는 것이 아닌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유학 중인 재일교포 정세연(29)씨는 “처음 한국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 다급한 용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전화를 사용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며 “만약 일본에서 그랬다면 사회적인 통념상 최소한의 기본 소양을 갖추지 못한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받는다”고 말했다.

정씨는 “나 혼자 편하기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시민 의식이 합의된다면 휴대전화 예절은 자연스레 지켜지는 것”이라며 “역지사지의 시민 의식이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는다면 휴대전화 사용 규제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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