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열풍
인문학 열풍
  • 김은성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6.05 12:10
  • 수정 2009-06-05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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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속 마음의 길 찾기
4050 주부들 문전성시
2일 저녁 7시 마포구청 지하 1층. 소나기를 동반한 강풍과 변덕스런 날씨를 뚫고 모인 20여 명의 주민들은 페미니스트 바버라 크루거의 사진, 설치미술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해머링 맨, 넷아티스트 장영혜씨의 플래시 등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현대를 대변하는 다양한 문화예술 이미지가 빔프로젝터를 통해 1시간 30분가량 재현되고 수업이 끝날 무렵, 드디어 ‘우리는 지금 어디 즈음에 있을까요?’라는 이날의 화두가 던져졌다.

바깥의 요동치는 정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다른 세상의 ‘느린 수업’은 마포구가 진행하는 인문학(문화예술로 읽는 근현대 역사) 강좌 중 하나다. 

상아탑에서 천대받던 인문학이 장삼이사(張三李四)와 만나 화려하게 부활했다. 노숙자, 재소자, 장애인, 성매매 여성, 학부모, CEO를 위한 인문학 등 다양한 ‘변신’을 거듭한 인문학이 각 지역 자치구로 파고들며 붐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8월 서교동에서 시작해 올해 6개 동으로 확대된 마포구를 비롯해, 구로구에서도 접수한 지 4일 만에 모집 인원 80명이 마감되고, 강동, 강남, 서대문, 부산 등 각 지자체에서 인문학의 향연이 펼쳐져 주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동네 강좌에는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의 주민들이 참여한다. 특히 이들 중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4050 주부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장재원 마포구 평생교육팀장은 “자녀들의 교육에서 해방돼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기로서 자아를 찾고자 하는 4050 중년 여성들의 도전이 거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문학에 주목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토대로 저렴한 가격에 집 근처에서 고급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인근 타 지역 주민들도 수강 요청을 문의해 온다”며 주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실제로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이날 강좌에 부인과 함께 참석한 김상영(60)씨는 “요즘은 쫓기듯 무조건 빨리 산다고 해서 더 삶이 나아지는 그런 시대가 아닌 것 같다”며 “과거에는 돈이 삶의 기준이었는데 지금은 인문학 수강을 통해 마음의 폭이 넓어져 윤택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전업주부 최원자(45)씨는 인문학 수강을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 ‘한국사상의 이해’라는 과목을 수강한 최씨는 다른 여러 강좌를 거쳐 그간 꿈도 꾸지 못했던 대학에 도전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그는 “강의를 통해 세상을 살며 느꼈던 조각들이 퍼즐 맞추듯 정리됐다”며 “담 쌓았던 공부의 벽이 허물어지고 세상에 대해 마음이 열리면서 얻게 된 자신감이 가장 값진 재산이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문학 열풍에 대해 이날 강연을 맡은 정윤수 문화평론가는 “사람이 하나의 부속품으로 배속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우리 삶이 의지와 무관하게 내던져지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그런 답답한 일상 속에서 품위 있는 삶, 다른 대안적 삶을 고민하는 마음의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인문학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유행’으로 번져 한 차례 지나가는 바람으로 그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시장권력을  견디기 위해 위로 받는 새로운 도피처로 동원되고, 부유층의 인맥과 취미를 돕는 액세서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준영 교수는(경희대·실천인문학센터) “후기 자본주의에 따른 인문학 강좌 열풍은 세계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무조건 우후죽순 강좌가 생겨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왜 인문학인지, 어떤 인문학을 요구하는지에 대해 사회적인 성찰과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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