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닫힌 서울광장…영결식 경복궁 앞뜰서
동네 분향소 확산…사상 최대 추모 열기

서울시청 앞 광장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닷새째인 5월 27일 저녁.

추모제 발언에 나선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 상임대표는 “슬픔마저도 경찰버스로 막아 사람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냉혹한 정권”이라고 성토했다.

남 대표는 “전임 대통령 서거에 예우도 제대로 못하는 속 좁은 정치 현실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며 울분을 삭였다.

애써 울분을 삼킨 이는 남씨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예정된 서울광장 앞 첫 시민추모제는 시작하기 1시간 전 정부가 장례 준비 등의 이유로 갑자기 불허하면서 덕수궁 옆 정동길로 옮겨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추모제 방송 차량을 통제했고, 이에 맞서 원혜영·안민석·김유정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0여 명이 연좌 농성을 벌였다.

서울광장이 열린다는 뉴스에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왔다는 박창규(38·경기도)씨도 “오늘 오전 광장이 열린다는 뉴스를 확인하고 일부러 달려왔는데 역시나였다”며 “이는 정부가 국민의 시민의식을 무시한 결과”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처럼 울분을 삼키며 시작된 추모제는 참여연대 등 40여 개 시민단체와 종교계가 참여한 ‘시민추모위원회’ 주최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1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함께한 추모제는 진혼굿, 노찾사 등의 다양한 공연 및 영상물 상영, 추모 발언과 시민들의 눈물로 채워졌다.

교생 실습 중인 최초로씨는 “노무현이라는 희망을 보며 내가 겪는 힘겨움, 억울함을 견딜 수 있었다. 지켜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죄송하고 한스럽다”며 무대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유지나 동국대 교수는 “우리의 연인, 오빠, 형님, 친구로 가신 아름다운 인간 꽃, 당신이 뿌린 씨앗을 꽃 피워가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금옥 여성연합 사무처장은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인의 위대한 패배를 상생과 평화의 꽃으로 피워내자”고 호소했다. 이석태 민변 전 회장은 “고인이 가진 유일한 생명을 던지면서까지 말하고자 했던 시대적 과제와 그 답을 찾는 숙제가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고 말했다.

추모제가 끝난 후에도 시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일부는 시청 앞 광장 불허에 대해 자유 토론을 벌이고, 일부는 학을 접고, 일부는 노래를 하는 등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인간 띠가 곳곳에서 생성됐다.

시민 분향소가 차려진 대화문 앞은 자정에도 촛불과 국화꽃을 든 조문객들의 행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끝없는 행렬에 시민들은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이명박 대통령 탄핵 청원에 서명을 하거나, 추모 글을 남기고, 쓰레기를 줍는 등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이 같은 조문 열기는 대화문 앞을 벗어나 강남역, 신림동, 광주 일곡동 등 지역 주민이 자발적으로 만든 동네 분향소까지 확산됨에 따라 더욱 고조되고 있다. 국민장장의위원회 측에 따르면 27일 기준으로 조문객 수가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여 조문 열기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주부 김승희(40)씨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고인의 꿈은 바로 우리 같은 서민들의 꿈이기도 했다”며 “막무가내로 닫힌 현 정권과 비교되면서 지켜주지 못한 고인의 가치와 정신이 더욱 그리워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29일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 이은 노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은 새벽 5시 봉하마을에서 발인식을 한 뒤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영결식을 진행한다.

영결식 뒤 오후 1시부터 30분간 서울광장에서 노제가 치러지고 오후 3시께에는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이 이뤄질 예정이다. 화장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밤 9시쯤 다시 봉하마을로 돌아가 유가족의 뜻에 따라 영구 안치 장소를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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