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정글 속 ‘빈집’을 아시나요?
도심 정글 속 ‘빈집’을 아시나요?
  • 김은성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5.29 11:41
  • 수정 2009-05-29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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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형’의 생태 공동체…‘빈말’이 ‘현실’로 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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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정글 한복판에 모두가 주인인 도발적인(?) 집이 있다.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를 의미하는 빈(賓)집으로 손님들이 주인이 돼 계속 새로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지난해 2월 남산 자락 해방촌에 둥지를 튼 빈집은 최소한의 공간분담금만 내면 ‘누구나’ 원하는 만큼 공동으로 머물며 대안적 삶을 창조해 나가는 곳이다. 공간분담금은 하루 6시간 이하 1000원, 초과하는 경우 2000원, 장기투숙자도 30일로 계산해 6만원과 식대 2만~3만원을 추가로 내면 된다. 이는 ‘하한선’으로 경제적 여력이 있는 경우 자율적으로 더 많은 분담금을 내기도 한다.

처음 세 명으로 시작한 빈집은 ‘입소문’을 타고 분담금만으로도 ‘흑자’를 유지해 30여 명의 사람이 머무는 ‘4곳’의 빈집으로 늘어났다. 이곳의 살림살이는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되며, 빈집의 운영을 통해 따로 돈을 버는 주체는 없다.

빈집에는 싼 하숙집으로 생각하고 들어온 이, 환경 등의 세미나에 놀러왔다가 눌러앉은 이, 공동체에 대한 꿈을 가진 이, 반자본주의 혁명을 꿈꾸는 이 등 다양한 ‘꿈’이 공존한다.

그 꿈들은 여성, 평화, 환경, 생태, 대안적 삶 등의 키워드로 ‘느슨하게’ 연결된다. 소유와 투기의 대상으로 무섭게 치솟는 서울의 집값을 비웃기라도 하듯 빈집의 도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함께 가난하자는 빈(貧)집이기도 한 이곳은 자본주의로 인해 집 밖으로 밀려난 일들을 다시 불러와 ‘즐거운 놀이’를 통해 필요한 물품을 자급자족한다. 공동 농장과 텃밭 가꾸기를 시작으로 직접 술과 장을 빚고, 동네에 버려진 소파 등을 ‘노획’해 재활용하며, 설거지물을 모아 변기에 사용하는 등 적극적인 생산 활동을 벌인다. 또 그 외 침 뜸, 옷 수선, 목공예, 컴퓨터 수리, 악기 연주 등 제 각각 사람들이 지닌 재능을 서로 교환하며 가능한 한 모든 생산과 소비가 빈집 안에서 순환토록 했다.

빈집에서는 누군가 불쑥 떠오른 얘기를 던지면, 여기에 다른 이들의 상상이 더해져 빈말이 되고, 빈말이 여러 사람의 입을 돌면 어느 새 힘이 모아져 ‘현실’이 된다. 이 같은 빈집의 실험은 ‘집’과 ‘사람’이 맺는 ‘새로운’ 관계로도 확장됐다. 빈집 가족들은 ‘혈연’대신 ‘유대감’으로 맺은 대안 가족이 되었다가, ‘경쟁’대신 서로 ‘상호 보완’해주는 공동체 일원이 되고, 또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가 집단이 되기도 한다. 빈집 식구들은 나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 원하는 ‘별명’으로 이름을 대신하며 서로 존댓말을 쓴다. 또 모두에게 열린 빈집의 특징은 홈페이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빈집의 대문은 여느 홈페이지와 달리 누구나 내용을 추가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툴을 사용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타지에서 난생 처음 만난 여행자들이 서로 알아가고 친해지기 위해 베푸는 우정과 환대만 있으면 돼요.”

처음 빈집을 창안한 ‘지음’씨가 귀띔한 공동체 생활의 유일한 ‘조건’이다. 여느 사람들처럼 ‘짝궁’과 둘이 살던 지음씨는 문득 수면 시간 외 거의 비어있는 집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세계 여행을 다니며 각국의 여행자들과 했던 다양한 공동생활을 토대로 ‘함께 사는 독립된 공간’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빈집이 태어났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열띤 호응으로 빈집이 급작스레 확대되면서 고민도 생겼다. 자연스레 식구가 늘다보니 즐거운 놀이가 노동이 되고, 노동이 일부 사람에게 집중되는 불균형의 문제가 발생했다. 또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다 보니 저마다 다른 생활방식 등이 부딪쳐 소소한 갈등을 낳기도 한다.  

“문제가 생기면 대안을 제시하고 함께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부대껴요. 처음엔 불편해도 상대를 신뢰하고 기다리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인지상정으로 자율적으로 균형이 맞춰져요.”   

지음씨와 함께 빈집을 시작한 짝궁 아규씨가 전하는 문제 해결 비법이다. 덕분에 현재까지 빈집에서 누군가가 강제로 ‘방출’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서 아규씨는 “과거 직장생활이나 가족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먼저 회피하고 관계 맺기를 포기했었다”며 “빈집에서는 서로 잘 몰라 이해되지 않는 점이 오히려 더 친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관계 맺는 법을 배우며 성숙해진다”고 자랑했다.    

우연히 빈집의 싼 방 값을 전해 듣고 찾아와 장기 투숙을 하게 됐다는 ‘공룡’씨는 빈집을 소개해달라는 기자의 우문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 같은 현답을 남겼다. 

“찾아오는 손님들로 인해 매일 새로운 사건과 이야기가 발생해요. 어떤 분이 무슨 상상을 하고 찾아와 어떻게 현실이 되는지 예측할 수 없는 저에게 빈집을 소개하는 일은 가장 어려운 숙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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