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입시 교육은 그저 잘 그린 그림을 요구해 왔다. 그러다보니 그림을 배우는 학생들도 처음부터 그림의 가치를 잘 그린 그림에 맞추게 된다. 이러한 풍토는 미술대학에 들어오면서 혼란스러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림에는 잘 그린 그림만이 있는 것은 아니며 못 그린 그림 또한 있는 것이다. 다만 다양한 방식의 그림 중에서 어떠한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를 찾아내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미술학도나 감상하는 일반인들에게도 같은 어려움이 있다.
그럼 좋은 그림은 무엇인가. 또한 어떻게 그려야 되는가. 그동안 그려오던 그림을 그릴 것인가, 버려야 하는 것인가. 많은 이들이 조언한다.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그동안 답습해오던 입시 그림은 버려라.”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흐나 박수근의 작품은 과연 잘 그린 그림인가? 우리가 보기에는 투박하고 거칠기만 하다. 그럼 이런 그림은 잘 그린 그림에 속하지 않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에 폴 세잔(프랑스, 1839~1906)과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프랑스, 1825~1905)의 작품 등을 통해 비교해 본다.
폴 세잔은 사실적 묘사보다는 물감이나 물감을 칠하는 기법에 더 집중하고 자연스러운 3차원적 형태보다는 기하학적인 2차원적 형태로 나타냈다. 그는 자연주의적 사실보다는 기하학적 형태를 더욱 강조했다. 어떤 장면과 대상을 묘사하는 것보다는 ‘그림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본질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질문은 오늘날 20세기 작가들에게는 자연스러운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와의 조화
동시대 아카데미 회화를 추구했던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의 ‘욕녀들’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기법과 영묘한 미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오늘날에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19세기 말 프랑스의 혁신적인 작가들(인상주의자)에게는 이러한 아카데미 회화의 전통은 피부의 색조나 모델링에 치중되고 있다. 어디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신빙성 있는 공간의 창조와 의미도 없는 모델의 포즈, 지적인 도전의 결여라고 비판하며 무시했다. 하지만 세잔은 이런 고전주의의 구성과 영원성을 높이 평가했다. 더 나아가 그는 고전주의의 견고성을 자신의 작품에 받아들이고 지적인 열의와 결합시켰다.
21세기 미술에 있어서 좋은 그림이란 잘 그려진 그림이나, 낙서처럼 그려진 그림일지라도 작품이 우리에게 사고하게 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한 세기가 지났지만 카를로 마리아 마리아니(이탈리아, 1931~)의 ‘구름 속 두상’(2004)을 보면 신화 및 고전주의 모티브의 눈부신 섬세함을 대거 인용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적 기법을 통해 숭고한 의식이 과거, 현재, 미래와 조화를 이루며 지속적인 명상을 느낄 수 있다. 또한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사이 톰블리(미국, 1928~)의 ‘사계’는 누가 보아도 낙서투성이처럼 보이지만 그는 만물이 소생하는 전통적 이미지를 제시하는 대신, 모호한 이미지를 탄생시키고 있다. 그가 그려낸 이미지 속의 관능적 색채는 폭력성만큼의 평화스러움을 자아낸다.
잘 그린 그림보다는 지속적 흥미와 감흥이
잘 팔리는 그림은 좋은 그림이 되면서 우리의 미술 현장에는 상업성만 남았다. 그렇기에 너도 나도 잘 그리려 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그림이 팔려나간다. 그들은 시대를 잘 적응해가고 있다. 하지만 잘 그린 그림만을 선호함으로써 우리의 미술 현장은 기형적으로 변하고 있다. 또한 미술이 새롭게 환기시키는 생각들이나 느낌들은 이전의 방식과는 전혀 새로운 것들로 받아들여지고 표현되고 있다.
좋은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을 택하든 자신의 작품에 솔직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작품은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그림의 현장은 다양성이 인정되고 요구되어야 한다.
좋은 작품이란? 잘 그려지기보다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볼 때 흥미로움과 새로운 감흥을 줄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