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갔습니다.

그가 상징하던 시대의 아픔, 절망, 희망과 좌절,

한계를 모두 가슴으로 품고

낙화수가 되어 몸을 던졌습니다.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비겁함과 치졸함, 위선과 뻔뻔함 뒤에 잠시도 숨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권위의 무거운 갑옷을 스스로 훌훌 벗어던지고

타자와 소통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몸을 낮추어

타인을 높일 줄 아는 사람,

진정 주변의 힘으로 중심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대통령이라는 철갑을 벗어 농부의 옷으로 갈아입고

“야, 기분 좋다”며 기뻐 소리칠 수 있는 사람,

국민 속에서 국민을 섬기며

국민을 사랑하며 소박하게 늙어가길 기원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러나 정치적 목적을 가진 모욕과 굴욕감에

정치적 대응을 할 수 없었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항거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학연, 지연, 연줄, 계파, 돈이라는 엄청난 권력의 매트릭스 앞에

정직한 그는 여전히 너무도 나약한 인간이었고

치욕적인 삶을 사느니

인간적인 죽음을 택했습니다.

한때 그를 너무나 사랑하고 열렬히 지지했기에

그만큼 더 그를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실망과 환멸로 그를 부정하면서 울분과 원망을

토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품었던 원망은 바로 거대 권력에

항거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것이었으며,

우리가 행했던 부정은 진실보다는

불의를 택하는 영악한 인간에 대한 부정이었습니다.

아니, 부당함과 부정의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자들에 비굴하게 아첨하며

그들의 권력 재생산에 기꺼운 도구가 되어 준

우리 스스로에 대한 회한과 부정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죽음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이며,

권력을 가진 자,

그들에 기생하는 자,

그들에 아부하여 생을 유지하는 우리 모두의

추한 자화상입니다.

“슬퍼하지 마라, 원망하지 마라”는 그의 마지막 말.

저는 그 말을 지키지 않으렵니다.

정치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라고 그가 던진 교훈에

넋 놓고 앉아만 있기엔

너무나 야만스러운 현실이 우리 눈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꿈꾼 새로운 정치를 바꾸는 힘이

여전히 국민에 있다는 믿음을 되새기며,

나는 오늘 촛불을 다시 켭니다.

“성별, 학력, 지역 등 다름으로 인한 차별 없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던

그의 이루지 못한 소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다시 광장에 나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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