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불황 때 남편들이 어느 정도의 위기의식을 느끼는지 직접 만나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 예상대로 남성들이 직장에서 느끼는 위기체감 정도는 다른 가족 구성원에 비해 훨씬 직접적이고 강렬했다.

“예전에는 한산하던 구내식당이 요즘은 2교대로 밥을 먹어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돼요. 예전 같으면 구내식당은 얼씬도 안 하던 동료들이 길게 줄 서는 걸 보면서 ‘아, 저놈도 저렇게 아껴 사는구나’ 하는 뜨거운 전우애를 느끼죠.”(김○○ 대기업 대리·33세)

“옛날에는 팀장이니까 한 번씩 폼도 잡아야 되고 낮에 야단친 거 밤에 술 사주면서 풀어줘야 하는데 요즘엔 그런 걸 못하니까 솔직히 가슴 아프죠.”(최○○ 중소기업 팀장·36세)

최고의 압권은 수시로 일어나는 구조조정이다. 보통 인사발령은 연말이나 연초에 나기 마련인데 불황에는 아무 때나 벌어지기 때문에 직장인들은 1년 내내 조마조마하다. 특히 평소에 보기 힘들던 CEO가 나타나 ‘회사가 어렵습니다’라고 운을 떼면 바짝 얼어붙는다.

“사장님이 손을 꽉 쥐면서 ‘올해 정말 잘했네’ 이러면 유임이에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죠. ‘올해 고생 많았는데 앞으로 더 잘해보게’는 아슬아슬 턱걸이했다는 얘기고, 그냥 ‘고생했네’라고만 하면 집에 가라는 소리예요.”

아내들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한 남편들의 그 처절한 몸부림을. 동료가 그만둔 날 쓸쓸히 돌아올 때의 그 허탈함을. 남편들은 이런 걸 아내에게 일일이 말하기 쉽지 않다. 얘기했을 때 아내의 반응이 두려워 얘기 못 한다는 남성들도 적지 않았다.

“저도 아내한테 말하고 싶죠. 그런데 만약 우리 회사에서 구조조정 한다는 얘기를 하면 제 집사람은 그날부터 매일 저를 닦달할 거예요. ‘오늘은 어떻게 됐어, 당신 상사가 뭐라고 안 해?’ 이렇게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니까 얘기를 더 안 하게 돼요.”

남편이 겪고 있는 위기를 말하게 하려면 아내들이 현명해져야 한다. 남편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중간에 들볶지 말고 최선의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만약 우려했던 위기상황이 닥치면 “그래도 살 수 있다”며 남편을 위로하고 새롭게 출발할 힘을 비축해야 한다.

남편들도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특히 가족을 부양해야 할 ‘식솔’로만 보는 관점은 이번 기회에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가족을 식솔로만 여기면 호황기에는 책임감으로 버티지만 불황에는 극도로 외로워진다. 지난 외환위기 때 얼마나 많은 중소기업 사장들이 가족 모르게 혼자 저세상으로 갔나.

“차 없는 애는 저밖에 없어요.” “어학연수 안 가는 애는 저밖에 없어요.” 이때 마음이 약해지면 ‘정말 저밖에 모르는 애’가 된다. 아이들이 가족 전체가 겪고 있는 위기와 고통과는 전혀 동떨어진 요구를 할 때 단호해야 한다.

남편, 아내, 자녀가 불황 때 고생하고 배우는 것은 지금 아니면 절대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이는 평생 살아가는 데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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