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장
이선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교장
  • 정백현 / 여성신문 기자 [=정리]
  • 승인 2009.05.15 10:14
  • 수정 2009-05-15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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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배운 만큼 넓게 보이고 삶은 알수록 행복해진다"
꾸준한 칭찬으로 학생들에게 용기 심어줘
무학의 한 풀어내는 학생들에게서 큰 보람

스승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큰 존경을 받는 교육자가 있다. 주부들을 배움의 길로 인도해온 일성여자중고등학교·양원주부학교·양원초등학교의 이선재(73) 교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 여자라는 이유로 평생을 무학(無學)의 한을 안고 살아온 주부들에게 제2의 인생을 인도해주는 그를 만나 행복한 배움의 의미를 들어봤다.     [대담 = 이남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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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웅 / 여성신문 사진기자 asrai@womennews.co.kr
-학교 설립 배경에 대해 들려주시죠.

“나 자신부터 어렵게 공부를 했다. 주위 분들의 도움 덕분에 공부를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그래서 공부할 기회를 놓친 사람, 공부는 하고 싶은데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을 보면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이 느껴져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도왔다. 어느 날 신문에 노천수업을 한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딱한 생각이 들어 실제로 가서 보니 1년치 학교 건물세를 내지 못해 노천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건물세를 다 내주고 학교를 다시 열게 했다. 그러자 학교 측이 내게 학교를 아예 맡아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학교 운영에 뜻이 없다고 의견을 전해줬다. 하지만 학교 운영진이 독립운동가인 이준 열사의 호를 딴 학교 이름 ‘일성’만은 반드시 살려달라며 호소했다. 그래서 학교를 맡게 된 것이 47년의 세월을 지나 오늘에 이르게 됐다.”

-처음부터 여성들만 교육시켰나.

“그렇지 않다. 지금은 주부들만 이 학교에 다니지만 설립 당시에는 남녀 구분 없이 청소년도 지도했다.”

-주부들의 배움터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1969년에 중학교 입시가 없어졌다. 이런 저런 이유로 중학교에 못 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무시험 조치로 못 가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학교 내에서 청소년 학생 수가 줄었다. 반면 성인 학생들이 한두 명씩 늘어났다. 당시 12명의 주부 학생이 있었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다 보니 교실이 거의 난장판이었다. 그때마다 주부 학생들이 ‘나이 먹고 배우는 것도 서러운데 상황마저 이러니 보통 힘든 게 아니다’라는 호소가 이어졌다. 그러자 교사들이 봉사정신을 발휘해 이들을 따로 가르친 것이 현재 주부 학교의 기틀이 되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나 에피소드는.

“열거하라면 100명이라도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학생이 무척 많다. 놀부NBG 김순진 회장도 그 중 한 명이다. 39세에 공부를 시작해 54세에 경영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지금은 러시아 모스크바대 객원교수도 하고 21세기여성CEO연합 회장까지 맡을 정도가 됐다. 만약 이런 교육기관이 없었다면 그런 위인이 과연 나올 수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적이 부진한 학생에게도 상을 준다고 들었다.

“우리 학교의 지도 방침은 소선필상(小善必賞)이다. 조금만 잘해도 상을 꼭 주자는 철학이다. 지난 2월에 570여 명이 졸업을 했는데, 상장을 1100개 수여했다. 졸업생 1인당 2~3장꼴로 받은 셈이다. 물론 나눠먹기식 시상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상은 되도록 여러 분야를 찾아서 주되, 시상 기준만은 엄격하게 하자는 것이 내 철학이다. 워드 2급 자격증을 따면 상을 주겠다고 조건을 내건다. 또 국가공인 펜글씨는 1급을 따야 하고, 한자는 3000자를 마스터 한 경우에 준다. 그런가 하면 영어 문장 1000개를 외워오면 상을 준다. 시상 조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진보상이라는 것도 있다. 예컨대 10점을 받던 학생이 50점을 받으면 준다. 노력하고 실천하는 의지를 보여준 학생들을 칭찬하기 위해 주는 상이다.”

- 학생들에게 칭찬을 많이 하는 이유는.

“우리 학교 학생들은 평생을 배움에서 소외된 가운데 살아왔다. 언제 어디서 어깨를 펴고 산 역사가 있겠는가. 몸은 좋은 음식을 먹어야 고루 자라듯이, 정신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칭찬하지는 않는다.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서 칭찬을 해주면 학생들도 쑥쑥 발전한다.”

-졸업생 전원 대학 진학은 엄청난 기록이다.

“입학생들은 처음엔 ‘중학교만, 아니면 고등학교만이라도 졸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래서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대학에 진학한 동문들을 초청해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게 한다. 선배들의 살아 있는 대학생 체험기를 통해 재학생들에게 용기와 진학의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졸업생 중에는 동국대에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한 학생도 있고,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한 학생도 있다. 이런 선배들을 볼 때마다 후배들이 용기와 자신감을 얻다보니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교장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우등생은.

“나는 오전 7시 20분에 출근하는데, 나보다 더 일찍 오는 학생도 있다. 공부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자세가 참 아름답고 자랑스럽다. 100세쯤은 우습게 사는 시대가 곧 온다. 제 앞가림도 어려운데 노인들의 삶을 대체 누가 봐주겠나. 나이 든 사람이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등교할 때 책을 보면서 오는 학생들이 10명 중 3~4명 정도 된다. 공부를 짐으로 생각하지 않고 삶의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얼마나 대단한가. 어떤 학생은 강원도 태백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등교한다. 학생들에게 ‘틈새 시간 공부법’을 자주 들려준다. 포스트잇 종이에 영어 단어를 써서 손바닥에 붙여 가면서라도 공부하라고 가르친다. 지옥철에서 공부하는 법, 서서 공부하는 법, 체면 가리지 않고 공부하는 법을 잘 실천하고 미래 지향적인 설계를 하는 학생이 우등생이다.” 



- 영어, 한자, 글쓰기 등을 강조하는 까닭은.

“우리 학교 교육의 목적은 주부들의 생활에 필요하고 미래 지향적인 교육을 펼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글쓰기를 우선으로 교육시킨다. 입학할 때는 입학 소감문을 쓰라고 하고 100% 제출하도록 지도한다. 아무리 쓸 말이 없고 글 솜씨가 서툴러도 ‘재미있었다’ ‘감동적이었다’ 등 한마디라도 쓰게 한다. 이런 식으로 글쓰기를 줄기차게 교육시키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학교에서 배출한 문인이 40여 명에 이르고 있다. 학생들이 쓴 글을 모아 매년 개교기념일마다 책을 내기도 한다. 중국 간체자도 가르친다. 한자를 배우면서 중국어 공부도 하는 셈이다. 지금은 간체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앞으로 이 간체자가 긴요하게 쓰일 것이다. 실제로 벌써부터 이를 경험하는 학생들도 있다.”

-주부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일이 있다면.

“우리 학교의 주부들을 한정해서 말하면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한 가지는 무학의 한이고, 또 하나는 가족 간의 소통 부재다. 국내에는 15세 이상 성인 중 초등학교도 못 가본 사람이 200만 명이 넘는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자는 430만 명쯤 된다. 학력 소외 계층이 600만 명이나 되는 것이다. 이는 통계청의 수치이지 실제로는 훨씬 더 많다. 이 중 70% 이상이 여성이고 주부다. 못 배웠다는 이유로 창피를 당하고 힘들어하는 주부들이 너무나 많다. 또 자식들과의 소통이 안 되다보니 힘들어한다. 통상적인 대화 이외에는 자녀들이 대화를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 ‘엄마는 몰라도 돼요’라는 얘기가 어머니들을 가장 슬프게 한다. 더불어 살자고 얘기하는 세상에서 ‘엄마는 몰라도 돼요’가 할 말인가.”

-주부 학생들이 지혜롭게 살 수 있는 덕목이 있다면.

“나는 ‘세상은 배운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행복해진다’는 격언을 학생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외우게끔 한다. 많이 배운 사람은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다. 공부는 가장 수지맞는 장사라고 학생들에게 늘 주지시킨다. 수지맞는 장사를 해야 삶이 편해질 것 아닌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라고도 얘기한다. 싫다는 생각, 어렵다는 생각, 못 한다는 생각만 갖고 있으면 결과적으로 못하게 되고, 어렵게 느껴지게 되고, 싫어지게 된다.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겠는가.”

-후배들에게 들려줄 참 교육자의 자세는.

“예전에는 교직을 성직으로 봤다. 그러나 요즘은 성직으로 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무엇보다 교사 스스로가 성직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고 있다. 교사에겐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교육도 하나의 서비스라고 생각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일성여자중고등학교·양원학교는…

서울 염리동에 위치한 일성여중고는 독립운동가 이준 열사의 호를 따서 만든 일성야학으로 출발했다. 이준 열사의 고향인 함경남도 북청 출신 피란민 자녀와 전쟁고아, 가난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운영되던 일성야학은 1953년 일성고등공민학교로 개편되었다. 주부들을 위한 배움터로 탈바꿈한 것은 일성고등공민학교 시절 재학 중이던 12명의 주부 학생들을 교사들이 따로 불러 모아 가르친 것에서 시작된다. 당시 학생들이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사연을 각종 매체에 전했고,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학교 규모가 확대됐다. 1978년에 구로공단과 마포 인근 등지에서 근무하는 근로 여성을 위한 무상 교육기관인 일성일요학교를 개설하여 10년간 운영했다. 1983년에는 일성고등공민학교 내에 주부반을 설치하여 운영했고, 1988년에 양원주부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일성고등공민학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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