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 확대 뒷받침해온 ‘파트너십’ 위기 맞아
정부와 여성·시민단체의 ‘수평적 협력관계’ 필요

권력 분점, 견제와 균형. 이는 삼척동자도 아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몇 년 전부터 정책 현장과 지식인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말은 이런 민주주의 기본 원리의 21세기형 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협치(協治)’라고 번역하는데, 정부나 집권세력의 일방적인 다스림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 파트너십을 주고받는 의사결정 및 정책 실행을 뜻한다.

한국에서 거버넌스의 사례를 찾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1980년대 이후 여성정책의 확대 과정을 살펴보라고 권할 것이다. 1980년대 여성운동의 성장은 당시 시민사회 공간의 폭발적 확대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그로부터 20여 년간 한국 여성운동의 흐름에서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민주화라는 보편적인 목표를 추구하면서 성장하였고, 또 그런 가치를 운동의 정당성으로 삼았다. 또 하나는 여성운동이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한 법률 제정과 정책의 도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고, 정책과 관련된 활동이 여성운동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 왔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여성운동의 저항과 주장이 없었다면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 제정을 전후한 수많은 여성정책 관련 법률들, 중앙부처의 여성정책 전담 기구인 여성부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터다.

운동의 열정, 그리고 정부기구의 확장을 열망하는 관료제의 동학이 성평등과 인권이라는 시대적 가치와 절묘하게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이념적 입장을 떠나 정부·시민사회 간 협력을 통해 선진적 정책과 가치를 제도화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거버넌스’가 실종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신뢰와 소통의 위기,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협치가 원활하게 이루어질리는 만무하다.

최근 지식인들 사이에서 거버넌스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진행 중이다.

논쟁을 촉발한 백낙청 교수는 “앞으로 4년간 대통령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대통령에게 남겨주면서 나머지는 내각과 입법부, 사법부, 언론, 시민사회 등의 몫으로 배분하는 정교한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우리 시민사회 자체가 취약하고 역량이 부족했던 점을 반성하고 아래로부터의 자기혁신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여성운동, 여성정책의 현장에서 체감되는 거버넌스의 위기, 협치의 실종은 매우 심각한 것 같다.

여성정책 의제의 축소, 여성운동의 위기의식이 심화되고 있고 그에 더하여 최근 여성부가 이른바 ‘녹색생활문화 실천’을 위해 새로운 대규모 여성단체협의회를 꾸리고 나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거버넌스란 유유상종의 파트너십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협치가 성공하려면 서로 다른 주체들 간의 수평적 협력이 필수이며,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들의 독자적 시각과 자발적 역량을 살림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위로부터의 자원배분을 통해 정부에 협력하는 우호적 파트너를 키운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며 거버넌스의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다.

공과를 누구에게 돌리건 간에 여성정책 확대 과정을 뒷받침해온 파트너십이 위기와 전환의 기로에 서있다. 당장 현안에 대한 시각과 입장은 다르다 해도 긴 안목에서 역량 있는 좋은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깨뜨리지 말아야 한다. 시민사회의 역량, 정부의 정책능력이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듯이 거버넌스도 시행착오와 경험의 축적을 바탕으로 서서히 성숙되는 것이다. 혹여 새로운 관변단체를 만들어 파트너로 삼겠다면 이는 시민사회와의 협력 속에 탄생한 여성정책의 모태와 그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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