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여의도에서 어느 국회의원의 비서로 근무를 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를 쟁취했다고 하나 사회 곳곳에는 불안과 위기가 남아 있었다. 정책비서였으나 간혹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탈 때면 여자인 게 화도 나고 서글프기도 했던 느낌이 우울함을 배가시켰다.

그해 4월 26일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는 6월항쟁의 연장이었다.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굴욕을 씻으려는 듯 야당이나 재야의 기세가 등등했다. 선거 결과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299석 중 125석(지역구 87, 전국구 38)을 차지해 제1당이 되었으나, 과반수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12대 민주정의당이 276명 중 148석이었으니, 새로 교체된 인물이 많았다.

여의도 (구)의원회관에는 며칠을 두고 신예 국회의원들이 속속 입성(入城)했다. 민주화 투사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들이 입주하던 날에는 의원회관이 떠들썩했다. 그 가운데 눈에 띈 한 의원실이 있었다. 신참 국회의원실은 고참 의원실에 비해 좁았다. 그 의원실엔 짐이 책밖에 없는 듯했다. 그 의원실의 세간은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조만간 그 의원실은 다른 의원실의 비서들로부터 부러움을 독차지했다. 한 마디로 탈권위의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해방구’였다. 그곳에서는 국회의원과 비서 등 지위의 문턱이 없고, 성별의 문턱이 없었다.

게다가 그곳에서는 월급날이면 소위 ‘월급분배’ 사건이 일어났다. 누구나 중요한 일을 한다는 전제하에 각자의 월급을 회수하여 지위와 무방하게 가족 수가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월급을 주고, 가족 수가 적은 사람에게 더 적은 월급을 주었다. 운전기사의 월급이 가장 많았고, 당시 보좌관이었던 이광재 의원이 가장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 민주화가 바로 이것이구나!” 각성이 몰려왔다.

국정감사, 청문회로 밤잠 잘 시간도 부족했던 1988년 그해. 부산이 지역구였던 그 국회의원은 보좌관, 비서들과 함께 수시로 오리털 침낭에 의지하여 사무실에서 날밤을 새웠다. 그는 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며 일약 국민 스타로 급부상했다. 그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민주화의 결실을 따먹은 사람이었고, 민주화의 우상이 되었다.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비서들과 수시로 토론회를 열었다. 법 앞에서는 누구나 공평함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직위로 인해 착복하거나 횡령하는 일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했다. 나아가 그는 독재와 싸워 민주화 시대를 일구는 데 일조했고, 법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이다.

이제 그가 자신의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하여 단돈 1만원이라도 불법적으로 수수했다면 그는 마땅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목적이 어떠하건 과정이 부정하였다면, 동정을 받을지언정 벌을 받는 것이 그가 주장해온 정의의 실현이다. 그게 노무현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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