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3세가 느끼는 독특한 정체성 혼란 그려내"
2007년 칸영화제 대상 등 국제적 인정받는 아시아 대표 여성 감독
재일교포·일본인의 짧은 만남 통해 한·일 관계 및 전통 계승 표현
1997년 첫 장편 극영화 ‘수자쿠’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신인상)의 최연소 주인공이 됐고, 2007년 ‘너를 보내는 숲’은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가와세 나오미 특별전’이 열릴 만큼 고정 팬을 확보한 감독이기도 하다.
‘어떤 방문’이라는 주제 아래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코마’는 가장 돋보인 작품이었다. 나라현의 작은 마을 ‘코마’를 배경으로 재일교포 3세와 일본인 여성의 1박 2일간 짧지만 인상적인 교감을 그린 이 영화 속에는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일 관계와 전통의 계승, 그리고 젊은 남녀의 감정선이 섬세하게 표현됐다.
“제작 중에 환율이 급등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굉장히 낮아져서 이틀 만에 촬영을 마쳤다”며 말문을 연 가와세 감독은 “주연배우 외의 배우들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신인 배우들을 기용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적인 방법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재일교포 3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평소 이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재일교포 1세나 2세의 경우 한국인이 일본에 있다는 혼란을 느끼는 반면 3세의 경우 자신 안에서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 않지만 주변에서 ‘너는 한국인이 아니냐’는 말을 들으며 자신이 깨닫지 못한 혼란을 외부로부터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그려가고 싶었습니다.”
또한 이번 영화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한국의 판소리와 일본의 전통 가무극 ‘노’의 절묘한 조합이다. 영화를 구상하게 된 것도 이 마을에 고구려 왕을 그린 족자가 있다는 소식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면서부터다.
“나라는 일본에서 제일 처음 도시가 생긴 지역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전 고대의 나라에 한국인이나 한국과 연결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판소리 가사 속에도 이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 있는 등 의도하지 않게 리얼리티가 만들어진 부분이 많았습니다.”
가와세 감독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가족을 떠났고 뒤이어 어머니도 집을 나간 후 그는 외할머니에게 입양되어 자랐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다 23세 되던 해 뒤늦게 아버지를 찾아 나서게 된 그는 그 과정을 직접 촬영한 다큐멘터리 ‘달팽이: 나의 할머니’(1992)가 주목받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영화에 대한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자기 치유의 영화’라 불리는 그의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묘한 울림을 남긴다.
활발히 활동하는 중견 여성 감독을 찾기 힘든 일본, ‘여성 감독으로서 살아가기’에 대해 묻자 그는 “여성 감독이라서 특별히 힘든 점보다는 가정주부로서 스태프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적고 작품에 몸과 마음을 다할 수 없는 점이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칸영화제 대상 수상 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그는 영화 만드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커졌다고 고백했다.
“처음에는 영화를 통해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다음 세대를 위해 책임감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의무감이 느껴진다고. 아시아의 여성 감독으로서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에 대한 기대감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