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은 끝나지 않았다
‘전설의 고향’은 끝나지 않았다
  • 오한숙희 / 여성학자
  • 승인 2009.05.08 10:54
  • 수정 2009-05-08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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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에서 당한 억울한 일로 ‘귀신’ 된 여성들 많아
묻혀버린 고 장자연씨 등 억울한 이야기들은 어디로

왜 귀신은 대부분이 여자인가. 여자들이 그만큼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부장제가 혹독하게 여자들을 억압하던 시절이니 여자들의 한 속에는 시집살이로 요약되는 인권침해, 인격모독, 학대, 배신, 강요된 희생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젊은 여자들은 성적인 착취로 인해 죽는 예가 많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전설의 고향이란 드라마의 소재가 된 것이다.

꽤 오래전에 ‘전설의 고향’이라는 TV 드라마가 있었다. 일종의 공포 추리물인데 전국 각지에 내려오는 옛 이야기를 토대로 매주 단막으로 한 편씩 방송하는 것이었다.

그 드라마에는 소복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입에 피를 흘리는 젊은 여자 혼백(귀신)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들은 항상 억울한 죽음을 하소했다.

그의 시신과 함께 묻혀버린 죽음의 배후를 캐내는 과정이 드라마의 중심 줄거리이고 한을 푼 귀신이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고을 수령이나 암행어사 등)에게 감사하며 떠나는 것이 대단원이었다.

그 후 수령이나 어사는 승진하거나 집안의 우환이 해결되는 ‘선물’을 받는다. 말하자면 권선징악의 늘 뻔한 스토리였건만 공포와 추리라는 두 가지 매력이 매운 비빔밥처럼 구미를 끌어당겨 나는 단골 시청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자리 잡게 되었다. 왜 귀신은 대부분이 여자인가. 여자들이 그만큼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부장제가 혹독하게 여자들을 억압하던 시절이니 여자들의 한 속에는 시집살이로 요약되는 인권침해, 인격모독, 학대, 배신, 강요된 희생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젊은 여자들은 성적인 착취로 인해 죽는 예가 많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전설의 고향이란 드라마의 소재가 된 것이다.

이제 전설의 고향은 정녕 끝난 것일까. 드라마는 막을 내린 지 오래지만 나는 오늘도 전설의 고향을 자주 본다. TV가 아닌 내가 사는 현실 세상에서 말이다. 장자연 사건도 그 중의 하나다. 죽음의 배경이 유야무야 묻혀버린 것도 드라마와 같다.

이제 청백리 수령이 나타나거나 암행어사가 등장할 타이밍이다. 그런데 그 ‘배역’을 맡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가 이것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적격자가 없다. 물론 경찰이나 검찰이나 언론 등 마땅한 배역자들이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결같이 배역을 고사한다. 하긴 배우들도 아무리 주변에서 적격이라 해도 드라마가 끝난 후의 파장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배역을 선택하게 마련이니.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의 한은 비이성적 방법으로 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힘없는 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낼 수 있는 길은 귀신 형용밖에 없고 그 귀신을 현실과 연결하는 영매 역시 가장 천한 집단으로 분류된 무당밖에 없는 것이다(사실 드라마 전설의 고향은  본질적으로는 공포 추리물이 아닌 여성 멜로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는 굿판을 제안한다. 여자들의 한이 서리서리 맺힌 나라는 잘될 수가 없기에 단지 여자만을 위한 굿이 아니다.

고인이 된 장자연이 전설의 고향에 나오면 무어라 말할까.

“집 수색만 하지 말고 방 수색도 하란 말이야. 큰 방 작은 방 구석구석 뒤져 보면 내 억울한 죽음의 배경이 다 나오게 되어 있어. 그러면 자연히 해결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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