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안실 공동생활 100일 "진실규명은 유족의 의무"

 

“사람이 여섯 명이나 죽었는데 사회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요. 우리가 싸움을 멈추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을 포함해 더 힘없는 사람들이 한두 명 죽는다 해도 아무렇지 않은 사회가 돼버리는 거예요.”

용산 참사로 숨진 고 윤용현씨의 부인 유영숙씨는 ‘엄마 된 도리’로 끝까지 싸우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유씨는 졸지에 ‘테러리스트 아버지’와 ‘폭도 어머니’를 두게 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유족들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다짐하며 지낸 날이 29일로 100일을 넘어섰다. 책임자 처벌도, 진상 규명도, 사과도, 보상도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는 가운데 달라진 것이 있다면 폐허가 된 용산 현장에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라는 것뿐이다.

유족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한남동 순천향병원 영안실에서 고인과 함께 생활한다. 아이들은 숙제할 곳 없는 영안실에서 하루 두 번 분향소의 향과 음식을 갈아드리고 아침마다 영정 사진 앞에서 인사하며 학교로 향한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인들은 영정 사진 앞에서 하루 일과를 얘기하고 기도하며 때로는 소주잔을 기울인다.

어떤 이는 난도질 당한 남편 시신이 어른거려 잠을 못 자고, 또 어떤 이는 세상을 향한 말문을 닫아버리고,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기로 약속한 아이들은 신새벽에 밖에 나가 숨죽여 울다 들키곤 했다.

그러나 이와 아랑곳없이 영안실 앞은 대기 중인 50여 명의 경찰들이 경계를 더 강화해 유족들이 움직일 때마다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등 온갖 신경전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또 유족들이 언론에 관심을 호소하기 위해 용산 현장과 청와대 앞에 발이 부르트도록 다니는 동안 경찰과 실랑이가 벌어져 유씨는 팔의 인대가 늘어났다. 고 양회성씨의 둘째 아들 종민이는 무릎 연골이 파열됐다. 게다가 병원 이용료가 3억원가량 쌓인 가운데 재개발조합이 유족에게 8억7000만원의 손해배상까지 제기해 해결의 실타래가 더 꼬이는 형국이다.

명예회복,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구속자 석방 등을 외치는 유족들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지만,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검찰은 법원의 열람 등사 결정마저 무시하며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도 ‘용산특별법’ 등 각종 재개발 법안이 발의됐지만 ‘공수표’에 그쳐 국회 차원의 제도 개선 노력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남편도 잃고 용산철거대책위원장인 아들마저 감옥에 보낸 전재숙씨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어 두려울 것도 없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매일 남편 영정 앞에서 기도로 하루를 여는 전씨는 용산 참사가 가난한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어엿한 치킨 집 사모님으로 꿈에도 철거민이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는 추모제조차 막는 경찰과 대치하던 중 아스팔트 위에서 남편의 영정 사진이 산산조각 난 것을 보며 세상이 약자들의 삶을 허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씨는 “용산은 단순히 유족만의 문제로 끝나선 안 된다”며 “우리를 통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재개발로 더 이상 힘들어지지 않도록 바뀌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은 아이들은 울지 않는다. 부인들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쓰리다.

집이 헐리면서 교복이 없어져 체육복을 입고 등교했던 고 이성수씨의 차남 상현이는 반장이 돼 친구들에게 용산특검 서명을 받고, 고 윤용현씨의 장남 현구는 대학교와 영안실을 오가면서 백내장 수술을 앞둔 동생과 다친 어머니를 돌보며 아버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또 동물을 좋아해 수의사가 꿈이었던 고 이상림씨의 5살배기 손녀는 할아버지를 살리고 싶다며 과학자로 꿈을 바꿨다.

혼절을 거듭하며 눈물이 마를 날이 없던 부인들은 어른스런 아이들을 보며 싸움이 끝날 때까지 울지 않기로 약속했다.

유씨는 “저희처럼 바보 같은 사람들도 ‘진실’은 가릴 수 없다는 걸 안다”며 “평생 테러리스트의 자식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게 될 아이를 위해 설사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평범한 아빠, 엄마로 반드시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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