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기 위하여’

 

한 여인이 갯벌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모습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연이어 말라 죽어버린 생합(조개)들이 가득한 갯벌이 나타난다. 한 어민이 침울하게 이야기한다. “2주 동안 물을 못 먹다가 비가 오니까 빗물인지 짠물인지도 모르고 다 올라와 죽어버리는 거야.”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했던 계화도 어민들의 싸움을 담은 다큐멘터리 ‘살기 위하여’는 이렇게 사람과 자연의 죽음을 응시하며 시작한다. 평생을 갯벌에서 살아온 한 여성은 예고 없이 물길을 열었던 정부 당국의 안이한 행정으로 인해 갯벌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물길이 막힌 갯벌에서 생합들은 제 살을 빨아먹으며 말라죽어갔고 어민들의 삶의 터전은 무덤으로 변해버렸다.

“내가 바닷가에 사는 게 원망스럽더라. 내가 왜 바닷가에 살아서 이런 것을 보나. 그것도 생명이고 우리도 생명인데.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어. 사람이 고문당하면 신문에라도 나지.”

15년이 넘게 새만금 간척사업을 사이에 두고 계속됐던 정부와 어민·환경단체들의 지루한 싸움은 2006년 정부의 간척사업이 타당하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과 정부의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일단락됐고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도 잊혀갔다. 그러나 영화 ‘살기 위하여’는 대법원의 최종판결 전후 6개월간의 계화도 어민들의 마지막 몸부림을 담아내며 “어민들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카메라는 대책위나 환경단체, 정부 당국 등 어느 한쪽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보다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계화도의 어민들, 그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게 싸우는 계화도의 어머니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가부장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법칙은 시민운동권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대부분 남자들, 그것도 지역 유지들로 한정된 피해주민대책위원회. 자신의 실리를 따지기에 바쁜 대책위 고위층들은 해상 시위에 대한 의견도 제대로 모으지 못하고 대책위원장은 언론 앞에서 횡설수설하며 시민단체들도 머뭇거리며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남자들과 달리 언제 어디서나 방조제 공사에 대한 부당함을 당당하게 얘기한 것은 계화도의 여성들이었다. 계화도의 어머니들을 투사로 만든 것은 갯벌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었다.

대책위조차 정부와 보상금을 놓고 협상하려 들 때, 모두들 지쳐 있을 때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보상금이 아니라 해수 유통을 이뤄내 갯벌을 살리는 것”이라며 나섰다. 농림부 청사를 찾아가 “우리가 나쁜 짓을 한 게 없는데 왜 갯벌을 죽이냐?”며 소리치는 이들은 “밥 먹고 사는 일이 뭐가 부끄러워?”라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청와대 앞 1인 시위도 어머니들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온몸을 던져 막아내려 가장 열심이었던 것도 계화도의 여성들이었다.

“저는요, 남들 조개 잡는 거 삼분의 이밖에 안 잡아요. 조개랑 놀고, 물새랑 놀고…”라며 수줍게 웃는 순덕 이모에게서 몸으로 터득한 생명의 존엄성이 느껴진다. 결국 방조제는 막혔지만 계화도의 어머니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바닷가 언저리에 ‘생합다방’을 열었다.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갯벌에 쏟아놓으며 살아온 이들은 이제 이곳에서 미래를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개봉한 지 1주일도 채 안 된 상영관의 불이 켜졌을 때 관객은 혼자뿐이었다. 우리 독립 다큐멘터리에 대한, 그리고 새만금 갯벌과 계화도 어머니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간절히 기원해본다. 감독 이강길,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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