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미술공간’ 등 알게 모르게 사라지는 곳 많아
대안적 문화예술 펼칠 수 있는 공간 반드시 필요

최근 들어 알게 모르게 사라지거나 축소되는 기관들이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던 인사미술공간이다.

“2000년 창의적 미술 ‘언어’의 생산자들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출발한 인사미술공간은, 특화된 아카이브와 지속적인 워크숍 기능을 기초로 작가들의 무제한적인 상상력을 프로덕션화하는 시각예술의 연구개발(R&D) 및 다기능 복합지원센터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소개하고 있는 인사미술공간의 정의다.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기존의 미술 터에 해방적 비평과 실험의 공간을 안착시키는 미술 ‘활동’ 프로젝트들을 꾸려왔던 이 공간이 필자에게는, 비록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이 작고 소박해도 왠지 파리의 퐁피두를 연상시키는 기분 좋은 시민의 문화 공간이었다. 다음달부터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서 그동안 진행되었던 몇몇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지난 2년간 수행되었던 ‘동두천’ 프로젝트가 시선을 잡아끈다. 이 공간과 함께 폐간될 저널 ‘볼’지 9호에 상세히 그 과정이 기록되어 있는 이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흥미롭다. 전 지구적으로 상업화의 길을 가는 아트세계에 맞서서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저항적 대안 아트를 추구하는 여러 나라 기관들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초국가적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볼’지 9호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작업이 첫째, 동두천이라는 특정 지역·장소에 대한 민족지적 탐색과 동두천 및 한국 근대의 군사주의를 둘러싼 문헌 연구 등 인문학과 사회학, 문화실험의 경계를 넘나드는 ‘공부’와 실천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는 점. 그리고 둘째, 그 ‘공부’의 결과물 또한 사진, 텍스트, 영상물, 퍼포먼스 다큐, 드로잉 등 다중적인 장르를 통해 재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 실천의 내포와 외연이 해체되고 재구성되고 확장되는 멋진 예가 아닐 수 없다.  

동두천은 그동안 여성주의 연구자들, 활동가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던 곳이다. 그러나 여성(주의) 활동가뿐만 아니라 ‘미적 작업’을 수행하는 아티스트들이 동두천에 2년 동안 코를 박고 그 장소의 ‘드러냄’을 고민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동두천처럼 일의적인 해석의 언어를 거부하는 다중적 지층을 지닌 곳, 실질적인 장소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인 기표인 이곳을 침입이 아닌 개입의 방식으로 지역민과 비지역민 양측에 ‘감지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것이야말로 예술이 잘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러나 이번 동두천 작업자들이 보여주었듯이 이것은 물론 자기 변신을 꾀하고 진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인사미술공간이 ‘작가들의 무제한적인 상상력을 프로덕션화하는 시각예술의 R&D’를 이런 지역연구로까지 확장해서 고민했다는 것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대안적 공간들, 시도들이 너무 많아지면 그 ‘대안’이라는 것 자체가 거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들이 예외 없이 문화적 성격을 띠고 상품화되는 현 상황에서 기존의 문화나 예술의 관습과 가치체계를 철저하게 의문시하고 새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대안적 시도들’은 지금 너무나 부족하다.

예술의 개혁이 사회변혁이고, 예술 경험이 제공하는 ‘낯선’ 충격과 모호하고도 깊은 울림이 점점 사라져가는 윤리적 감수성의 자양분임을 이제 막 통감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서둘러 예술을 다시 시장이나 아니면 고리타분한 ‘예술의 전당’으로 넘겨주려는 것은 아닌지. 시민공간으로서의 대안공간들이 더 이상 쪼그라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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