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를 다녀와서

“남편이 육아휴직으로 집에 있게 되면 일거리만 더 늘어나게 된다는 불평을 여성들이 하는데요, 유럽에서는 어떤가요?”

말레이시아 정부대표의 발언이다. 유엔본부 내 회의장에 웃음이 번지고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이 질문에 대한 노르웨이 정부대표의 진지한 답변. “우리 노르웨이에서는 남자들도 직장을 택할 때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직장인가 알아보죠. 아버지의 육아휴직 등을 통해 부부 간에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개최된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의 본 주제는 ‘HIV/AIDS 돌봄을 포함한 남녀의 책임공유’였다.

대부분의 가사와 돌봄노동이 여성에게 편중되어 있고, 사회 전 영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인식에 따라 어떻게 이를 타개할 것인가가 올해 주제였다. 에이즈 문제까지 포함된 것은 세계적으로 에이즈 환자 돌보기가 여성에게 심각한 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주간 개최된 회의에서는 주제에 대한 고위급 라운드테이블(우리 대표부 박인국 대사가 사회를 맡았다), 전문가 패널토의 2회, 일반토의 등이 진행됐다. 유엔 고위직 인사들, 각국 정부대표, 국제노동기구(ILO) 등 유엔 전문기구, NGO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다양한 시각의 문제 진단과 처방, 각국의 사례 등이 발표됐다.

한국 정부대표단은 변도윤 여성부 장관을 수석대표로 해서 여성부, 외교부, 법무부, 노동부 등에서 참가했고, 지자체는 서울시와 경상남도가,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또 NGO 대표들도 여럿 참석했다.

필자는 전문가 패널토의에 초청되어 패널리스트 자격으로 참석했다. 필자가 부탁받은 발표는 특히 아시아 시각에서 돌봄노동을 남녀공동의 책임으로 하도록 어떻게 정책 주류화를 할 것인가였다.

반갑게도 현재 여성지위위원회 부의장으로 있는 우리 대표부의 박은하 공사참사관이 이 패널의 사회를 맡아 더욱 의미가 있었다. 본 주제 외에도 현안으로 닥친 금융위기와 성인지적 관점에 대한 전문가 패널,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남녀의 동등한 참여 패널이 있었다.

회의의 마지막 날 채택된 위원회의 합의결론(Agreed Conclusion)은 북경행동강령과 여성차별철폐협약의 이행을 비롯해서 각국이 시행해야 할 다양한 조치를 10쪽에 걸쳐 담고 있다.

2주간의 회의 동안 각국 정부와 NGO들이 주최하는 각종 토론회가 수십 개씩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서울시와 경상남도가 성평등 정책 사례를 발표한 부대행사는 이미 여성신문에 소개된 바 있다. 한국 NGO들이 아시아 단체들을 초청하여 주최한 토론회도 성황리에 진행되었고, 그동안의 전통대로 참가자들에게 맛있는 한식도 대접하여 환영을 받았다. 여성지위위원회가 전 세계 여성계의 네트워크의 장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공식회의 중 행해진 모든 발표, 토론, 발언 등은 유엔 웹사이트(www.un.org/womenwatch/daw/csw/53sess.htm)에 게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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