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 등 시민단체 잇따라 입주
병원이 있는 서울 수유동에서 꽤 먼 곳으로 이사를 감행한 진짜 이유는 ‘즐겁게 살기 위해서’다. 문 원장은 “성미산 마을에는 꿈꿔왔던 일들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늘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전했다. ‘동네사진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최근 영상 동아리에 관심을 가지며 다큐 찍기에 도전하고 있다.
그의 남편 안기영씨는 성미산 마을 엄마·아빠들이 결성한 ‘아마밴드’ 기타리스트로, 동네에서 유명한 밴드 스타로 활약하고 있다.
합정동 근처 성산동에는 ‘도심 속의 기적’이라 불리는 성미산 마을이 있다. ‘공동육아’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1994년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세워 아이들을 공동으로 키우기 시작한 곳이다. 아이들이 성장해감에 따라 다양한 분야의 활동이 이뤄졌고 2001년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계기로 성미산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동네 큰길에 위치한 ‘동네부엌’에서는 일하는 부모들이 퇴근길에 반찬을 사가고, 그 옆 되살림가게에서는 썼던 물건을 가져다주면 마을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 ‘두루’를 받을 수 있다. 카페 ‘나무그늘’에서는 주민들이 오며가며 안부를 주고받고, 성미산학교에는 장애 아동과 외국인 등 다양한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즐겁게 공부를 한다.
길가 곳곳 마을 향기가 가득한 이곳에는 최근 시민단체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한국여성민우회와 환경정의, 함께하는시민행동, 녹색교통 등 4개 시민단체가 5층짜리 건물 ‘시민 공간 나루’를 세우고 한집 살림을 시작한 것이다.
‘나루’ 지하에는 국내 최초의 마을 극장인 ‘성미산 마을극장’(cafe.naver.com/sungmisantheater)이 개관해 성미산 사람들이 직접 운영을 맡고 있다.
어르신영화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라디오 편지쇼 ‘내 나이 마흔에는’, 요일별 마임축제 등 이미 다양한 문화공연이 이어지고 있는 이 극장은 어린이들이 뛰어놀기 좋도록 나무 대신에 푹신한 재질의 의자도 마련해 놓았다.
이 외에도 생활협동조합, 성미산차병원협동조합(자동차정비소), 마포청년회, 장애인자립자활센터 등 다양한 공동체가 성미산 마을에 함께하고 있다.
마을 연결망을 일구고 하는 ‘사람과마을’ 위성남 운영위원장은 성미산 마을을 “일상생활에서 관계망을 맺고 사는 독특한 커뮤니티”라고 규정지었다.
이는 마을 주민이 되려면 이런저런 동네 커뮤니티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미산 마을은 강력한 규율이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소위 ‘운영진’이 없다. 따라서 이사를 온 후 관계를 맺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신경써주지 않는다.
하루에도 다양한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지만 스스로 찾지 않으면 누구도 소식을 전해주지 않는다. 늘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 주민들이 ‘하고 싶은 사람이 나서는 자발적인 실행문화’ ‘평등한 호칭문화’ 등이 존재하는 마을을 일궈가고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 교수는 성미산마을을 두고 “부모들이 더 연로해지면 노부모를 공동으로 돌보는 너싱홈(nursing home)도 만들어져 고령화 문제의 해법도 내놓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며 “스스로 마을을 형성한 이곳 주민들은 세시 절기에 따라 마을 축제를 즐기며 살아간다”고 전했다.
성미산마을은 “홀로 꾸는 꿈은 단지 꿈일 뿐이고,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라고 말한 설치미술가 오노 요코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이 시대 아름다운 커뮤니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