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숙인 늘어난다
여성 노숙인 늘어난다
  • 김은성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4.03 12:17
  • 수정 2009-04-03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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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감소 추세서 불황 여파로 급격히 증가
수용능력 300여 명에 그쳐…응급보호센터 ‘0’

# 0시, 서울역 화장실 vs 대합실

승객이 끊긴 서울역 여자 화장실에서는 세면대 수돗물 소리와 손 건조기의 바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잠잘 준비를 하는 여성 노숙인들이 얼굴 등을 씻고 건조기에 몸을 녹이기 때문이다. 쇼핑카트에 온갖 짐을 가득 실은 한 여성 노숙인은 세수를 마친 후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변기 뚜껑 위에 앉은 채 잠을 청했다.

한편 서울역 대합실의 많은 남성 노숙인들 가운데 정신장애를 지닌 일명 ‘꽃꽂이’(잘 곳을 얻기 위해 남성 노숙인과 함께 생활하는 여성 노숙인)라고 불리는 한 여성 노숙인은 그들과 어울리던 중 한 남성 노숙인을 따라나섰다.

# 새벽 1시, 서울역 인근 주차장

서울역이 청소를 하느라 문을 닫는 새벽 1시부터 2시 사이가 되면 노숙인들은 밤바람을 피해 인근 지하 주차장 등에서 몸을 누인다. 거침없이 행동하는 남성 노숙인들 가운데 얼굴 등 노출되는 부분을 모자, 마스크 등으로 모두 가리고 남성 옷을 입어 얼핏 보면 남성처럼 보이는 한 여성 노숙인이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잔뜩 긴장된 눈빛으로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보이지 않는’ 여성 노숙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변웅전 위원장이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공식 집계한 전체 부랑인 9492명 가운데 여성이 3305명으로 부랑인 3명 중 약 1명이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불황이 본격화되기 전 2007년 집계된 2461명보다 29%가량 증가한 수치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꾸준히  여성 부랑자 수가 감소한 데 반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앞의 사례처럼 남장을 하는 등 여성 노숙인들은 길거리보다 병원 대합실, 철야예배, 경비 없는 빌딩 등에서 노숙을 하고 있어 실제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여성노숙인센터 입소를 문의하는 전화도 폭주하고 있다.

대표적인 여성보호시설단체인 열린여성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8건, 11월 20건, 12월 31건, 1월 34건으로 계속 증가세다. 게다가 최근에는 경기 불황의 여파로 취업 전선에서 밀려난 20대 여성들의 문의도 부쩍 늘었다.

열린여성센터 서정화 소장은 “경제가 어려워 여성들이 일순위로 퇴출당하다보니 밑바닥에 있는 여성들이 밀려 거리로 내몰리는 것 같다”며 “최근에는 취업을 못해 거리로 몰린 ‘88만원 세대’들의 입소 문의가 부쩍 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여성 노숙인들은 늘고 있지만, 전국 85개 노숙인 시설 중 여성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10곳으로 전부 합해도 300여 명까지만 수용이 가능하다. 또 긴급사태 시 잠깐 쉴 수 있는 여성응급상담보호센터 ‘우리들의 좋은 집’이 문을 닫아 현재는 응급 구조 시스템마저도 전무하다.

이에 따라 상당수 여성들이 쉼터를 찾지 못해 거리 폭력과 범죄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가임 여성의 경우 아동문제로까지 이어져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하지만, 여성 노숙인은 정작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여성 노숙인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혼자인지, 자녀가 있는지, 장애나 정신 질환이 있는지에 따라 제각각 달라 남성 노숙인들보다 더 섬세한 지원과 관심을 필요로 한다. 20대는 일자리와 관련된 노숙인이 많고, 30~40대는 대부분 기혼 여성으로 장시간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해 아이들과 함께 나온 경우이며, 그 외 신체 및 정신장애를 가진 경우도 많다.

특히, 아이를 동반한 여성 노숙인들의 경우 처음에는 가정폭력시설에 입소하지만, 이혼 등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정해진 6개월의 수용 기간을 넘겨 노숙 시설로 오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여성 노숙인에게는 주거, 경제, 육아, 심리, 교육 등 여성부 및 보건복지부의 전반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정작 이를 관할하는 정부 부처가 없다. 여성을 대변하는 여성부는 노숙인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공을 넘겼고, 보건복지부는 ‘부랑인 및 노숙인 보호시설 설치·운영규칙’이 보건복지부령으로 돼 있지만 2005년 노숙인이 지방 이양 사업으로 변경되면서 자치단체에 공을 넘겼다.

정부가 서로 핑퐁게임을 하는 사이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가운데 늘어난 여성 노숙인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당장 열린여성센터만 해도 재개발 사업으로 오른 전세를 감당할 수 없어 임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열린여성센터 서정화 소장은 “여성 노숙인 사업은 중앙 정부가 직접 나서서 시설을 지을 수 있는 특별 예산 등을 편성해야 한다”며 “어느 정책이든 빈틈이 있기 마련인데, 각 부처가 서로 예산이 없다는 것을 핑계로 떠밀며 직무유기를 하는 동안 아무 대책 없는 여성 노숙인들이 복지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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