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주의자들의 카페
“삶은 문화고, 문화는 공간을 매개로 형성되고, 공간과 사람이 관계 맺는 방식은 문화를 매개로 이루어지니, 어쩌면 삶 자체가 공간의 문화정치가 아니겠는가.”
‘공간의 문화정치학’의 저자 이무용씨 말대로 공간에는 문화정치가 존재한다. 최근 대안문화의 인큐베이터이자 한국의 문화발전소라 불리는 홍대문화가 ‘오프 홍대’라 불리는 합정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매개체는 문화공간 ‘카페’다. ‘합정동 벼레별씨 골목을 가꾸다’란 이름을 갖고 있는 카페 ‘벼레별씨(cafe.naver.com/vrvc)’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시민문화네트워크 티팟과 디자인 회사 간텍스트가 운영하는 곳으로, 독립영화 상영회와 이야기 강좌, 갤러리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벼레별씨를 이루고 있는 중심 키워드는 여성·교육·문화다. 1월에 오픈한 이후 지금까지 다큐멘터리 ‘나는 지지 않았다’ 외에 다양한 독립영화 상영회, 이야기 손님을 초대해 진행하는 ‘톡(talk) 톡(talk)’, 기획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돼 왔다. 벼레별씨의 행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풍성해지고 있다. 지난 3월 27일 전민규 프로그래머, ‘Re;film’과 함께 네 편의 단편영화 상영회를 가진 데 이어 4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 밤 ‘요가공부방’이 열리며, 9일부터는 ‘김규항의 예수전’ 강의가 두 달간 이어진다. 19일부터는 일요일마다 자기 치유를 문화코드로 만나는 ‘M&S 마음치유’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25일에는 카페에서 결혼식이 열리는 특별한 날이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이숙인 책임자는 하자작업장학교와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해온 경험을 살려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있다.
‘산지 직거래를 통한 정직한 음식과 다정한 소통으로 일상의 위로를 건네는 곳’으로 이곳을 소개하는 그는 “자유가 숨 쉬고 혁명적인 공간으로 존재해왔던 카페에서, 기존 마을이 잃어버린 가치들을 다세대 남녀노소와 함께 복원해보고자 한다”고 전했다. 오늘도 벼레별씨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즐거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벼레별씨’가 낮의 카페라면, ‘페퍼랜드’는 밤의 카페다. 비틀스가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애니메이션 ‘노란잠수함’에 나오는 바닷속 낙원 ‘페퍼랜드’에서 이름을 따온 작은 술집이다. 이곳은 오랜 기간 독립 큐레이터로 대안적인 미술운동에 참여했고, 여성사전시관 관장도 역임했던 오혜주씨가 꾸린 공간이다. 테이블이 7개 정도로 아담해 여성들이 즐겨 찾고 있고 샹들리에와 벨벳, 노출 시멘트 등의 소재들이 차가우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회 속에서 소수인 사람들이 이곳에서는 다수가 되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점도 페퍼랜드의 특징이다. 카페란 공간은 찾는 사람들이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인 만큼 합정동에서 다양한 여성·문화활동을 펼치는 이들이 주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오혜주씨는 “과거 기획자와 큐레이터로만 살아온 것에서 벗어나 카페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를 통해 우리만의 낙원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남성들도 많이 오지만 특히 여성들이 혼자서도 편안하게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페퍼랜드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 이 행사에는 누구나 부담 없이 자신의 물품을 가지고 나와 참여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총 네 번에 걸쳐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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