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사회에선 ‘큰 어른’ 찾기가 어려운가
왜 우리 사회에선 ‘큰 어른’ 찾기가 어려운가
  • 황정미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09.03.27 11:12
  • 수정 2009-03-27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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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교육열 등 어른이 되기 어려운 사회 여건 때문
젊은이들의 독립을 지원하는 다양한 시스템 확대해야
엄청난 사교육비 등으로 ‘보통어른’되기도 어려워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큰 어른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간혹 하곤 한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겪어온 탓인지 주변을 넘보지 않고 한 분야에서 지긋이 일가를 이룬 인물이 드물고, 또 어느 분야나 갑론을박과 편 가르기가 있기 마련이니 ‘우리 편이 아니어도 저 분만은 존경할 만하다’는 대승적 평판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 곁을 떠나셨을 때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놀라운 추도의 물결이 번졌던 것도 큰 어른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크고 절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요즘은 큰 어른이 아니라 그저 보통의 어른이 되기도 쉽지 않다. 2월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현황에 따르면 한국 청년층(15~29세) 중에 일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쉬었다’는 사람이 30만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청년층 실업률은 8.7%로 전체 실업률(3.9%)의 두 배가 넘는다. 실업의 기준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보면 조금 알쏭달쏭해서 가령 취업 준비, 진학 준비생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실업률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비경제활동인구와 더 이상 취업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 구직 단념자가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대규모 추경 편성, 청년인턴 확대 등 청년실업 대책 마련으로 부산해 보인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난관과 어려움을 단순한 일자리 부족으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오히려 사람이 평생 살아가는 생애과정 안에서 ‘청년기’의 의미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1970년에는 고등학교 졸업자의 26.9%만이 대학에 갔지만 이러한 비율은 2008년 83.8%에 이르렀다. 한국 청년이 학교와 학원 문을 드나드는 기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길어졌다. 취업을 해도 보수나 장래성이 맘에 들지 않아 이직을 거듭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도, 심지어 결혼 이후에도 부모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주변에 많다. 대학 진학에 들인 엄청난 사교육 비용, 이른바 ‘스펙’을 갖추기 위한 각종 학원비와 교재비, 결혼 비용 등을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비용이 무척 높은데도 불구하고 온전한 독립을 성취하기는 너무 어렵고 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여성의 입장에서 성인이 되기는 더더욱 만만치 않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란 매우 어렵고, 또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른바 적령기가 되면 결혼이나 출산을 해야 한다는 규범적 압력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직장에서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면서 동시에 가족생활과 안정적인 조화를 이루려면 여간 운이 좋지 않으면 안 된다.

어른이 되기 어려운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거침없는 신세대, ‘내 멋대로 한다’는 X세대를 언제 논했던가. 이제 기억마저 가물가물하다. 자녀 교육을 위해 부모가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한국식 교육열은 청년층의 독립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역으로 부모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청년들은 준비 없이 사회에 나갔다가 거듭된 시행착오 끝에 사회의 주변부로 물러나게 될 위험이 높다. 가족의 사적 뒷받침이 아닌 공적 정책과 제도로 청년층의 독립을 지원하는 사회시스템을 확대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어른이 되는 다양한 길을 열어주고 그들의 등을 따뜻하게 두드려주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큰 어른이 많이 나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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