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추월하는 판·검사 임용비율의 진실
남성 추월하는 판·검사 임용비율의 진실
  • 김은성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3.20 15:39
  • 수정 2009-03-20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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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취업·승진 과정에 성차별 겪어
결혼·출산·성적·외모 중요 요소로 작용
‘여풍 현상’에 가려진 ‘유리천장’의 실체

법조계 ‘여풍 현상’ 뒤에 가려져 막연히 추측으로만 존재하던 유리천장의 실체가 사실로 확인됐다.

인하대학교 법과대 이유정 교수가 여성 변호사 21명, 여성 사법연수생 27명을 대상으로 지난 2월 25일부터 3월 1일까지 취업 및 성차별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결혼과 출산이 취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취업 시 남성보다 높은 성적을 얻어야 하며, 외모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들의 판·검사 임용 비율이 남성을 추월하는 현상 뒤에는 변호사로 취업하고 승진하는 과정에서 성차별을 겪어야 하기에 ‘공무원’인 판·검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면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교수는 지난 14일 이화여대에서 한국젠더법학회 및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공동 주최로 열린 제12차 한국젠더법학회 학술대회 발제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번 조사는 대상 숫자가 적다는 한계가 있지만, 여성 법조 현황에 관한 첫 통계분석 작업으로 유리천장 실태를 알리고 성차별적인 법조시장을 개선하는 좌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 변호사들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은 남성들과 사무실에서의 업무시간은 비슷하지만 가사 및 육아부담, 고객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편견 등으로 업무 외적인 만남(술자리, 회식, 골프 등 사적인 만남)을 적게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객과 업무 외적인 관계가 중요한 기업인수·합병, 부동산, 건축 등의 분야에서 업무 수행에 지장을 줘 수임능력 저하, 파트너 진입 실패 등의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로펌에 근무하는 여성 변호사들은 업무능력이나 업무시간에서 남성 변호사들과 차이가 없으나,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적 관계 등으로 고객과의 관계 형성에 한계를 느끼고, 이것이 성차별을 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사법연수생들의 경우도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취업 기회가 적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대형 로펌에서 여성 채용을 기피하는 경향 때문에 출산, 육아휴직이 자유롭고 업무 차별이 적은 판·검사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검사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아(27명 중 3명) 취업 시 검사 임용 비율이 높은 것과 ‘대조’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검사로 임용되는 여성들 가운데 상당수가 변호사를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성차별로 인해 검사를 지망하고 있음을 유추하게 한다. 또 대형 로펌 취업 시 결혼이나 임신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남성보다 100등 이상 높은 성적을 얻어야 하며, 외모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답해 로펌에서의 성차별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이 같은 현상이 고착화될 경우 로스쿨 시대를 맞아 차별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 교수는 “지금처럼 시험성적에 따라 판·검사를 임용하는 방식이 아닌, 법조인으로서의 품성과 경험을 갖춘 경력 변호사를 판·검사로 임용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경우 같은 조건이면 남성을 우대하고, 인적 네트워크가 불리한 여성들의 채용을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 교수는 ▲법률가들에 대한 성인지적 통계와 분석 ▲법조계 업무 환경과 업무방식의 재구성 ▲성 평등한 판·검사 임용기준 ▲로스쿨에서의 법여성학 교육 ▲변호사회의 적극적인 역할 수행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또 “여성 법률가들은 남성과 ‘같음의 전략’과 동시에 ‘다름의 전략’도 함께 선택해야 한다”며 “남성과 똑같이 업무에 헌신하며 ‘적응’하되 관용, 배려 등에 기초한 여성 시각으로 남성적인 법조계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도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남성들의 기준 대신 여성 고유의 시선으로 새로운 법조 문화를 만들 것을 주문하는 적극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법무법인 파트너이자 공동 대표 변호사인 최일숙 법무법인 한울변호사는 “남성들의 기준을 따라갈 경우 여성이 처한 현실이 남성과 다르기 때문에 차별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성과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며 “남성의 기준에 동화되는 것이 아닌, 여성이 상대적으로 차별에 민감하고, 경쟁보다 연대와 돌봄 등을 중요시하는 것을 극대화해 여성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여성 법조인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지적도 있었다. 노정희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수임능력으로 연결되는 고객과의 만남이나 관계에서 여성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면 로펌 채용 단계에서 이를 고려하지 말 것을 주문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진입 장벽이 조직 내 공공의 일에 대한 여성들의 소극적인 자세, 조직에 대한 충성도나 적응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 등에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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