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스펙=좋은 직장’ 맹목적 신뢰
실무형 찾는 기업은 비중 낮게 평가
2030 세대가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뚫고자 준비하는 무기는 오직 하나, 바로 ‘스펙’이다. ‘스펙’은 신상명세서를 뜻하는 영어 ‘스페시피케이션(Specification)’에서 파생된 신조어로, 신규 채용 시에 반영되는 최종 학력, 평균 학점, 어학 점수 등을 말한다. 스펙을 올리기 위한 2030 세대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서울 S대 무역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지혜(24)씨는 외국어 학원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해 학교를 거쳐 다시 외국어 학원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다.
이씨의 기상 시간은 아침 6시다. 아침식사도 거른 채 달려가는 곳은 종로의 한 외국어 학원. “토익 점수를 더 올리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는 이씨의 토익 성적은 800점대 초반이었다.
학원 강의가 끝나면 학교로 가서 수업을 듣는다. 이씨는 일주일 중 3일만 학교에 가는 이른바 ‘주 3파’. 하지만 강의가 없는 날에도 학교 도서관을 매일 찾는다. 도서관에서 이씨가 공부하는 내용은 금융 관련 자격증. 전문 금융인을 꿈꾸는 이씨는 출중한 외국어 실력과 금융 관련 자격증쯤은 꼭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고 전했다.
저녁이 되면 이씨는 또다시 외국어 학원으로 향한다. 영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무리를 감수하고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숨 가쁜 이씨의 일과는 밤 10시에 마무리된다. 이씨는 “이렇게 공부를 해도 늘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스펙 경쟁자들의 맹추격이 두렵기 때문이다.
2030 세대가 이처럼 스펙 쌓기에 골몰하고 있는 이유는 ‘높은 학벌과 탄탄한 스펙이 좋은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맹목적 믿음 때문.
하지만 문제는 기업들이 전과 달리 스펙의 중요도를 낮게 평가한다는 것에서 발생한다.
최근 기업들의 채용 트렌드는 ‘실무형 인재 찾기’. 제 아무리 좋은 학점과 출중한 외국어 실력을 지닌 명문대 출신이라 하더라도 실무능력이 없으면 ‘0점 사원’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실무 경험이 전혀 없는 햇병아리 사원을 제대로 된 인재로 기르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위험 부담도 기업들의 실무형 채용을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많은 기업이 실무형 채용을 선호하다보니 자연히 스펙의 중요도는 낮아진 셈이다.
기업의 인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학생들이 표면적인 스펙 쌓기에만 집착하다보니 실무 능력은 물론이고,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특징을 찾기 힘들다”면서 “스펙에 투자하는 시간에 실무 능력을 키우는 것이 오히려 더 이득”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취업에 성공한 취업 선배들도 “표면적이고 일률적인 스펙 쌓기보다는 인턴십 근무, 자원봉사활동 등을 통해 자신만의 특성을 살려야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