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자리 잃은 여성 건설인…그래도 희망은 있다
설 자리 잃은 여성 건설인…그래도 희망은 있다
  • 전희진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3.20 14:44
  • 수정 2009-03-20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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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업무 과중·제도 유명무실·경기침체 등 ‘4중고’ 겪어
네트워크 강화로 ‘힘 기르기’… 틈새 공략으로 난관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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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건설인들에게도 ‘봄’이 오고 있다. 남성 중심 조직문화가 강하고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가장 심하다는 건설업계에서 여성 건설인들은 늘 맨손으로 밭을 일궈야 하는 입장으로 일하고 있다. 남성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하는 어려운 현실에, 최근 건설경기 악화로 상황은 더욱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산 넘어 산’ 험난한 건설업계

건설은 건축계획, 실내건축, 시공, 조경 및 도시계획, 교통, 토목 등 크게 6개 분야로 분류된다. 이 중 건축설계 분야에 여성들이 편중돼 있고 시공과 토목은 미미한 수준이다. 전반적으로 실무 현장의 건축사, 기술사를 포함한 여성 건설인의 사회 진출과 성장은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한국건설기술인협회의 2007년(9월 말 기준) 건설기술자 현황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된 여성 건설인은 총 5만8506명으로 전체 55만2185명의 10.6%를 차지하고 있다.

경력 5년 미만이 74.6%인데 비해 경력 10년차의 경우 5.8%, 경력 20년 이상은 0.4%에 불과하다.

건설업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남성에 비해 현저히 적고 진출 분야도 몇몇 분야에 국한되고 있다. 또 경력이 많을수록, 상위직으로 올라갈수록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런 현상의 주 원인은 업무 강도와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로 꼽힌다.

업무 특성상 잦은 야근과 주말근무 등이 여성들, 특히 출산·육아·자녀 교육을 맡아야 하는 기혼 여성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건설업계에 여성에 대한 편견이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과 같이 힘과 육체적 노동이 부각되는 업종은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해 객관적 잣대 없이 여성의 능력을 평가절하, 업계 진출 자체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한 여성 건설인은 “건설회사의 사장이 여성이면 시공 능력을 무조건 폄하해 평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실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공사 수주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때가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여성건설인협회가 ‘여성 건설인 활용 방안’ 연구를 위해 지난해 건설 관련 기관에 근무하는 건설인 6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는 이 같은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여성 건설인들이 느끼는 어려움으로 근무 스케줄이 36.3%로 가장 많았고 남성 위주 조직문화가 33.3%, 여성 차별 대우(승진, 임금 등)가 11.8%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들이 중도 포기하는 사유가 됨으로써 여성의 상위 경력직 진출이 부진한 이유와도 연계된다.

특히 여성이 건설기업 CEO가 되는 데 큰 걸림돌이 되는 것도 바로 여성에 대한 근거 없는 선입견으로 인해 판로 개척(공사 수주)이 어려운 탓이다.

한금숙 선창건설 대표는 “수주 능력은 기업의 생존 여부가 달린 만큼 CEO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며 “관공서 공사는 입찰로 이뤄지기 때문에 괜찮지만 하도급 등으로 행해지는 민간 프로젝트의 경우 여성에 대한 편견과 남성에 비해 부족한 네트워크로 여성기업이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10여 개 메이저 건설기업들이 전국 물량의 90% 정도를 싹쓸이하는 상황에서 여성 건설기업들에는 일정 자격요건을 갖춰도 이들의 협력업체로 등록할 수 있는 참가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략 200건의 공사를 해야 70억원을 벌 수 있는 반면 1군 건설기업의 협력업체가 될 경우 1건만 수주해도 200억원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엄청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한 여성 건설회사 사장은 “1군 건설기업들의 협력업체는 남성 기업들이 거의 차지하고 있다”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협력업체가 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할 때마다 심한 절망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여성 건설기업에 대한 지원 제도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조달청에서 발주하는 10억원 미만의 시설공사 입찰 때, 여성 기업과 공동 수급할 경우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실효성은 전혀 없다는 게 여성 건설인들의 주장이다. 자격요건을 갖춘 기업들끼리 경쟁하기 때문에 가산점의 이점이 사실상 크지 않다는 것.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 유명무실한 제도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경제위기에 따른 건설경기 악화로 여성 건설기업들이 더 큰 난관에 부딪쳤다. 대부분의 여성 건설기업들이 중소 규모이거나 영세하다 보니 보증기관 및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1999년 건설업 면허제도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되면서 건설업체 수가 10년 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입찰을 따낼 확률을 떨어뜨리고 있는 점도 여성 건설인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성 건설 전문인력의 활동 증진을 위한 적극적인 개선방안과 정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수한 여성 인력의 임원 승진 및 채용, 일정 비율 여성 할당제 시행 등을 통해 여성의 상위직 진출을 활성화하고 여성 건설기업을 위해서는 일정 규모, 특정 건물 설계 또는 공사 입찰 때 가산점 부여, 여성 건축가 제한 입찰 방안 등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장벽이 존재하는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 소수와 약자 계층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기업 차원의 출산·육아 지원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 가운데 비치는 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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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서도 최근엔 낙관적인 움직임들이 포착되고 있다. 우선 여성 건설인들에게 가장 취약한 네트워크가 조금씩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형 공사의 심의를 담당하는 국토해양부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회에 현재 여성 심의위원들이 30%가량 포진돼 있다. 이는 특히 여성 건설인들이 입지를 구축해 나가는 데 좋은 기반이 되고 있다.

김용미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이사는 “여성들의 심의위원회 참여가 활발할수록 네트워크 구축, 정보 수집에 유리하다”며 “여성 건설업체들 간에 공사 프로젝트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고, 이를 통해 공사 수주의 기회를 잡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여성 건설인들은 앞으로 위원회의 여성 비율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심의위원회의 상당수를 여성건설인협회 회원들이 차지하고 있어 이로 인해 협회 네트워크도 강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규모도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안영애 여성건설인협회 회장은 “협회라는 네트워크가 강해지고 회원들이 서로 힘을 합해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결국 여성 건설인들 스스로 힘을 기를 수 있고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불경기 속에서도 건설업계 전체가 침체된 것은 아니라는 점, 향후 건설 트렌드도 여성 건설인들에게 유리하게 흐르고 있다는 점도 희망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건설업계를 살리기 위한 사회간접자본이 계속 투입되고 있는 가운데 건축과 설계가 경기 악화로 하락세인 반면, 토목, 점포 인테리어, 조경은 활기를 띠고 있다.

이는 건설업계에 진출하려는 예비 여학생들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토목의 경우 도로, 교통, 철도 등의 기초 국가기반시설은 항상 수요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인천과 같이 2014년 아시안게임 등 행사를 유치한 지역의 경우 도시 미관 관리 차원에서 실시하는 공사가 많다.

건설 관련 학과 여대생들도 토목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중앙대 토목공학과의 여학생 비율이 50%에 가까웠다”며 “이제는 여성들로 이미 과포화된 건축 분야보다는 희소가치가 있는 토목 분야로의 진출을 통해 경제참여 기회를 용이하게 획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여성이 드문 분야로 진출해 활동 범위를 넓혀가려는 시도와 노력은 고무적이란 평가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아이템들의 신규 매장 개설이 활발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매장을 늘리는 추세여서 이에 따른 점포 인테리어 일감이 많다. 주택 건설 및 인테리어는 포화 상태여서 사양길인 것과는 정반대다.

김선미 메쎄 실장은 “요즘은 소비의 중심지인 명동, 종로, 압구정동, 삼성동에서 신규 매장의 인테리어 공사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며 “자영업을 하려는 구조조정 ‘명퇴자’들이 많아진 것도 한 원인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국가가 생태와 녹색성장에 중점을 두면서 뜨고 있는 조경도 여성의 섬세함이 잘 발휘될 수 있어 여성 전문 건설인력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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