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시청한 적이 없다. 따라서 장자연씨의 존재를 그녀의 사후에나 알게 됐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남겼다는 문건을 읽으면서, 기획사의 횡포를 감내하면서까지 ‘성공한 연기자’의 길을 꿈꿨던 고인의 열정을 느끼게 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지금 이 사안은 성 상납, 술 접대 혹은 폭행 등 각종 의혹을 두고 전 매니저와 기획사 대표 사이에 공방으로 번졌다. ‘사실이다’ ‘조작이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 벌어지는 이 추한 진실게임을 부득이 보게 되는 기분은 매우 불쾌하다. 이런 와중에 고인에게 부당하게 향응을 받은 의혹을 사고 있는 이들의 명단은 빠른 속도로 인터넷에 확산되고 있다.

명단을 접한 언론계 지인 여럿의 반응은 놀랍게도 일치한다. ‘이거 들춰지기는커녕 깨끗하게 묻혀버리겠군’이라는 말로써. 사실 지금은 경찰이 고인의 문건에 등장한 사람을 부르기도 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인은 말이 없다. 고인으로부터 대접을 받았다는 이들은 한결같이 ‘그런 일은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끗발 좀 있는 사람들이다. 약자에게만 늘 강한 경찰이, 또 검찰이, 피해자가 사라진 마당에 가해 의혹을 받고 있는 강자의 뒤를 샅샅이 캐 법에 의해 처단할 수 있을까. 답이 안 보인다.

사회는 한동안 시끄럽다가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신인 여배우들은 또다시 고관대작들의 술자리에 불려나갈 것이다. 물론 이들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겠나.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스폰서의 물적 후원 혜택 또는 TV 출연 기회를 부여받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연예기획사와 연예인 사이에 체결되는 불공정 계약을 조사해 그 결과를 발표했다. 연예인이 일방적으로 손실을 입는 계약을 한 경우가 총 204명에 달했다는 내용이었다. 발표 내용 중에는 ‘계약 기간 연애하지 말 것’이라는 조항도 있다고 한다. 기막힐 노릇이다. 충격적인 부분은, 이 조사의 대상 회사가 영세한 곳이 아닌 돈 잘 벌기로 열 손가락 안에 있는 대형 연예기획사였다는 점이다.

이 땅에 여성 연예인에게 도발적 어조를 담아 제언한다. 당신도 장자연씨처럼 고발자가 될 수는 없을까. 단, 살아서. 이 모든 관행은, 양두구육(羊頭狗肉) 수컷들의 발정(發情)으로만 단정할 수 없다. 피해자의 묵인 또는 동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치욕을 당하고도 ‘성공의 첩경’이라며 묵인해준다면, 그 여성은 이미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인 셈이다.

잠시간의 수모와 불이익이 두려워 악행과 타협한다면, 우리네 여성 연예인들은 늘 ‘고급 창녀’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인기 있는 여자 연예인’보다 ‘존경하는 여자 연예인’을 만나고 싶다. 당신이 그 주인공이 돼 줄 수 없겠나.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