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모성’ 나누는 당당한 엄마가 되자
사회와 ‘모성’ 나누는 당당한 엄마가 되자
  • 이상화 /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09.03.13 10:33
  • 수정 2009-03-13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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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모성예찬론은 오히려 미안함과 죄책감 안겨줘
무조건적 사랑·희생은 ‘순수’ 영역으로만 존재치 않아
‘엄마’를 키워드로 하는 문화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엄마가 뿔났다’라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논쟁거리더니, 최근에는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으며, ‘친정 엄마와 2박 3일’이라는 연극 역시 많은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언론매체는 ‘경제위기와 침체를 타고 등장한 ‘엄마 신드롬’이라고 명명하면서 “무조건 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 엄마. 그 엄마를 기억하면서 위안을 받겠다는 심리”라는 다분히 ‘계산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독자인 ‘우리’가 이 작품들에서 감동을 받는 것은,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심오하고도 충만한 교감을 원형적으로 경험했고, 늘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필요와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동안 무심하게 혹은 당연하게 여겨왔던 엄마의 존재, 그리고 그 삶의 의미를 자식으로서 감동과 회한을 가지고 성찰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희생적인 ‘모성 예찬론’을 강화하고, 현실세계에서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또 다른 부담감과 미안함을 안겨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얼마 전, ‘여성의 일자리 찾기’의 어려움을 다룬 라디오 방송에서 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 아이 학원을 그만두게 했다. 학원을 보내지 못해서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막막하고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더 좋은 학원이나 과외를 시키지 못해 미안해하는 엄마의 심리적 부담은, 경제위기 이전에도 이미 만연해 있던 현상이다.

사교육은 유치원부터 시작되고, 학원조차도 서열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상호 경쟁과 상대적 박탈감이 모두를 지배할 때, 과연 어떻게 해야 엄마들의 미안함이 해소될지 알 수 없다.

특히 경제 위기 심화는 엄마의 미안함을 더 증가시킬 것이 분명하다.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은, 경쟁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에서 ‘순수’ 영역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도구적인 ‘자원’으로 보고 ‘휴먼-엔지니어링’으로서 완벽한 아이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제하는 사회구조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이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존재로 키워내야 하고,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는 엄마의 위치는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미안함은 엄마의 이중적인 위치에서 생산된다. 공부를 강요할 때 미안하고, 남들처럼 공부를 못 시키거나 안 시킬 때 역시 미안하다. 그리고 미안함이 커지면 죄책감이 된다.

죄책감은 내면화된 사회적 규범인 초자아가 자아를 질책하고 닦달하면서 생기는 심리적인 상태다. 이러한 심리상태는 사실상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매우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다. 엄마가 미안해하면 아이들은 엄마가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를 불만스러워 하거나 부끄러워 할 수도 있다.

얼마 전, 대학 합격자 발표 이후, 한 학생이 찾아온 적이 있다. 그 학생은 전라도의 어느 섬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입학금과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했지만, 서울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할 방도를 찾기 위해 상담하러 온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 학생은 전혀 위축됨 없이, 의젓하고 씩씩하게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절대적인 빈곤 속에서 단련된 독립심과 당당함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대학입시에 도전하고, 합격하고, 그리고 빈손으로 서울에 와서 공부를 해보겠다는 용기와 능력을 키워준 것이라 생각된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각자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존재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벗어나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고유성을 가진 존재라는 믿음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와 자녀의 관계도 미안함과 죄책감, 불만과 부끄러움이 아닌, 인격적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신경숙 작가는 모성을 한 엄마의 좁은 어깨에만 바랄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나아가서 사회 자체가 모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만을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그래서 혼자서 ‘미안해’하는 굴레에서 벗어나서, 자식들과 그리고 사회와 그 ‘모성’을 함께 나누는 당당한 엄마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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