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인권보고서, 한국 여성 차별 문제 지적
제도와 멀리 있는 현실 격차 줄이기 과제

대한민국의 여성정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정책이 만들어진 이후 실행 방향이 묘하다. 여성정책의 효과적인 실천보다는 ‘단순히 이런 정책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시대가 변하고 정권이 변해도 이 같은 분위기는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현실감이 없는 정책들은 오히려 한국 사회의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게 만들었고, 세계에서 여성이 살기 힘든 나라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실제 한국은 세계에서 여성이 살기 힘든 곳으로 뽑혔다. 진원지는 미국이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연례 인권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여성 인권 실상을 세계에 알렸다. 한국의 인권은 전반적으로 존중되고 있지만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여전하다는 게 골자였다.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범죄, 가정폭력, 인신매매의 통계까지 자세히 기술했다.

특히 직장 내 성추행은 물론 고용과 임금, 승진에서도 차별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가장 중점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여성정책들이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2007년 이태경 당시 유엔 아·태 경제사회이사회 여성정책자문관(가족여성부 소속)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계 각국의 여성정책을 비교해 봤을 때 한국의 여성정책이 세계 최고지만 정책에 비해 한국 내 여성의 지위는 낮다”고 지적했다.

국내 여성정책 중 생리휴가제도,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가 힘들다. 또 여성 고위 관리자 할당제를 정책에 반영한 것은 아시아 최초다.

성매매 금지법은 개정을 통해 처벌 수위를 높였다. 세계여성포럼, 대한민국세계여성발명대회 등 개최에 있어서도 한국은 정부의 뒷받침을 바탕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대한민국 여성정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손꼽히는 까닭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성정책의 ‘실효성’이다. 여성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돼야 할 여성들을 중심으로 현실감과 동떨어진 정책에 대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여성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게 이유다. 예컨대 노동법상 생리휴가를 받기 위해선 대기업, 그것도 정규직 직원에 한정된다.

비정규직은 생리휴가 자체가 없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정규직 직원이라 할지라도 회사 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별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은 중소기업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띤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정아(29·가명)씨는 “정책상 생리휴가, 출산휴가가 있지만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직접 말을 하지 않지만 휴가를 쓰기라도 하면 퇴사를 종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직원이 많은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의 경우 생리휴가나 출산휴가를 사용할 경우 이를 메워줄 수 있는 대체인력이 없어 업무량 증가에 따른 동료직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여성으로서 자기 권리를 정당히 주장함에도 불구, 좋지 않은 편견을 우려해 오히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스스로에게 더 많은 제약을 두게 되는 셈이다. 여성 관련 정책들이 존재하지만 전혀 현장에 반영되지 않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여성정책의 실효성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또 있다. 법의 처벌 수위가 낮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은 처벌 수위가 낮은 점을 감안, 여성할당제·여성고위직 할당제를 시행하는 대신 벌금을 내는 형태를 선택하고 있기도 하다.

여성계 한 관계자는 “이미 양성평등을 다 이뤘다는 법 제도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도와 멀리 있는 여성들의 현실이 커 허울뿐인 굴레에 그치고 있다”며 “제도와 제도에서 떨어져 있는 여성들의 현실의 갭을 줄이는 게 한국 여성운동의 과제”라고 말했다.

현재 여성부는 대한민국이 세계에 부끄럽지 않은 양성평등 국가로서 평가를 받도록 하겠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변도윤 여성부 장관은 지난 3일 유엔 본부에서 개최된 제53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에 참석, 유엔여성개발기금(UNIFEM)을 통해 ‘국제전문여성인턴’을 늘리기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또 성인지적 관점에서 정부 부처의 국가 예산정책에 여성부의 입장을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성정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여성인권 신장을 이끌어 낼 수 없다. 그러나 정책을 만든 것 자체로 여성 인권의 신장을 이끌어 냈다고 볼 수도 없다. 성인지적 관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평등의 현실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과 이를 뒷받침할 만한 실효성이 따라줘야만 여권의 신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부 관계자는 “각종 여성정책들이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며 “기업이나 조직 등에서 정책을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정책과 제도적인 측면의 보안과 강화를 통해 해결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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