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 단국대 전임강사

1933년 9월 일어난 ‘김봉자·노병운 정사사건’은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카페 여급 김봉자와 의학사인 유부남 노병운의 정사사건이 밝혀진 후 김봉자가 자살을 하자 그의 연인이었던 노병운이 김봉자를 따라 자살을 한 사건이다. 당시 여급의 자살사건이 종종 신문에 실리긴 했으나 남성이 여성을 따라 자살을 한 것은 여타 사건과 매우 다른 일이었다.

이 사건은 ‘봉자의 죽음’ ‘저승에 맺는 사랑’ 등 대중가요나 극 형태인 대중적 문예물로 만들어졌다. 이 외에도 20세기의 대중문화는 여성들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20세기 전반 ‘여성’을 소재로 한 이야기 음반들을 분석해 ‘대중문화에 반영된 여성 소수자의 표상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엮인 논문이 눈길을 끈다. 이 논문은 상대적으로 약자이면서 소외계층인 기생이나 손님의 시중을 드는 여급과 같은 ‘여성 소수자’가 20세기 전반기 유성기 음반자료에서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분석했다. 

이야기에서 여성들은 대체로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걸려 자신을 끊임없이 헌신하고 희생하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지만 현실에서 그들의 사랑은 종종 깨지고, 유일한 욕망이 사라지면 때때로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이야기에서 남성들이 추구하는 욕망들은 갈등이나 충돌을 빚어낸다. 사랑을 중시 여기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또 다른 욕망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이용한다.

‘마지막 편지’(홍토무 작, 1934)란 극은 개성 부자 진성근을 독살한 계월이라는 기생의 편지(유서)를 계월이와 연인 사이였던 시춘이 자신의 친구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계월은 시춘의 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진성근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자기희생의 절정을 보여주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모성애’(1935)’나 ‘어머니의 힘’(이서구 작, 1939)에 등장하는 어머니들은 예전에는 기생이었으나 지금은 품팔이나 바느질품을 팔면서 오로지 자식을 위해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연인에게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 여성소수자의 속내를 드러내는 주요 기제로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유서나 유언이 전부다.

이 연구를 진행한 장유정 단국대 전임강사는 “20세기 전반 이야기 음반들은 남성의 시선에 갇혀버린 여성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며 이 한계는 이야기의 작자가 남성인 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연구자는 ‘상처를 드러내는 일’에 주목한다. 비록 작품 속에서 많은 여성들은 죽음을 택하지만 유서나 유언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상처를 말하는 것부터 치유가 시작되기 때문에 작품 속 그녀들이 말하지 못한 상처를 우리가 드러내야 될 때”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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