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불감증’이 낳은 비극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여성 제자를 두고 성희롱 발언을 해 비난을 받고 있다. 박 총장은 지난달 23일 ‘이명박 정부 1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판소리를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여성 제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생긴 토종이 애도 잘 낳고 살림도 잘한다. 요렇게 조그만 게 감칠맛 난다”라고 말했다. 인터넷에는 발언 당시의 동영상도 공개됐다.

누리꾼들은 “대학 총장으로서 저잣거리 약장수보다 못한 발언을 했다”며 박 총장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교육자에겐 좀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면서 “사과가 아니라 사퇴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내 동생에게 60대 남성이 토종이니 감칠맛이 나니 하는 발언을 했으면 주먹을 날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총학생회는 “박 총장이 여성의 몸을 희화화함으로써 열심히 노래한 제자를 분위기 띄우는 소재로 활용했다”고 성토했다. 총여학생회는 “살림을 잘하고 애를 잘 낳는 게 여성들의 꿈인가?”라고 되묻고, “박 총장의 교육관에 여성 교육관이 있는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반쪽짜리 교육을 받는다는 상실감을 느꼈다”고도 했다.

중앙대 교수들도 지난 2005년 하버드대 서머스 총장이 ‘여성은 과학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발언으로 결국 사임한 전례를 거론하면서, “과연 그가 최고의 지성을 대표하는 대학 총장의 직책을 수행할 최소한의 인격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대학 겸임교수인 진중권씨도 “이렇게 생긴 토종이 애도 잘 낳고 살림도 잘한다는 말이 고대 노예시장도 아니고, 학생을 무대에 세워놓고 선생이 할 소리냐”며 “도대체 자기 제자를 정치인들 모인 곳에 불러다가 소리 시켜놓고서, 공부하는 학생을 조선시대 관기 취급하듯 하는 게 스승으로서 할 짓인지…”라고 개탄했다.

발언이 문제가 되자 박 총장은 사과했다. 교직원들에게 사과 메일을 보냈고 총학생회와 언론을 통해서도 공개 사과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의 발언이 잘못인지는 몰라,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잘못인 줄 알았다고 했다. 박 총장은 “그 자리에는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도 있었고 다른 여성들도 많았지만, 오히려 강연이 끝나고 박수까지 받았다”며 자신의 발언이 아무렇지 않았다고 했다.

박 총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어머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라며 “절대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누리꾼들은 자신의 발언이 잘못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대학 총장의 ‘성희롱 불감증’을 문제 삼고 있다. 누리꾼들은 박 총장 딸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누군가 당신의 딸, 며느리, 부인에게 ‘감칠맛 나는 토종’ 운운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묻고 있다.

박 총장은 “여성 제자는 기사를 접하고 ‘우리 선생님을 이렇게 만들다니’ 하며 울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희롱을 당한 당사자인 여성 제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생님의 애정 어린 말씀이 그렇게 왜곡되다니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성희롱을 당하고도 당했는지 아닌지 모르는 게 더 비극이다”라는 의견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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