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미국 뉴욕시의 루트거스 광장에서는 1만5000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모여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는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듬해인 1909년 미국 전역에서는 이 여성 시위를 기념하는 첫 번째 국내 ‘여성의 날’ 행사가 열렸다.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세계여성의 날’ 제정을 결의하는 국제여성노동자대회가 개최됐다. 이후 1911년부터 세계 각국에서는 매년 다양한 ‘세계여성의 날’ 행사가 펼쳐지고 잇다.

100년 전, 산업화된 도시의 여성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개선, 교육의 기회, 선거권을 요구했다. 당시 여성들의 요구는 ‘빵과 장미’라는 노래를 타고 널리 퍼져나갔다.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빵과 영혼의 허기를 채워줄 사랑과 미의 상징 장미는, 한 마디로 여성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경제권과 복지 요구였다.

100년 후, 서구의 글로벌 여성정치는 여성들의 피해 상황을 강조하며 투쟁을 결의하는 종전의 ‘여성들만의 잔치’에서 ‘여성과 남성의 연대’로 초점을 옮기고 있다. 올해 유엔이 채택한 ‘여성에 대한 폭력 종식을 위한 여성과 남성의 연대’ 슬로건이나,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 제국들이 채택한 ‘여성의 목소리와 영향력’ ‘강한 리더십, 강한 여성, 강한 세계: 평등’ ‘돌봄노동의 공유’ 등 주제는 모두가 ‘여성과 남성의 연대’ 요구를 저변에 깔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행사 주체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채택한 슬로건은 ‘여성이 만들어요. 빈곤과 폭력 없는 행복한 세상!’ ‘괜찮은 일자리 100만 개 창출·부자감세 반대, 교육복지 확대·민주주의 수호, 여성인권 보장’이다. 여전히 우리는 ‘빵과 장미’에 대한 요구에 머물러 있고, ‘여성들만의 잔치’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서구 선진국들의 여성운동과 크게 달라 보이는 ‘차이’다.

이러한 ‘함께’와 ‘따로’ 전략이 엇갈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영국의 한 평론가는 관리자급 여성들의 성비 구성 변화에 주목한다. 즉 사회 각 영역의 여성 리더 비율이 남성지배 조직에 연쇄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임계질량(critical mass)’ 30%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사회조직 연구자 R 캔터에 따르면, 조직의 성격은 관리자들의 성비 구성에 따라 남성일색조직(uniform)에서 성비균형조직으로 단계적, 불연속적으로 도약한다. 즉 초기의 남성일색조직은 여성 관리자의 비율 15% 수준에서 남성지배조직(Skewed)으로, 35% 수준에서 남성다수조직(Tilted)으로, 그리고 45% 수준에서 성비균형조직(Balanced)으로 도약한다.

그러니까 남성지배사회를 벗어나서 여성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가시화되려면 여성 관리자 비율이 적어도 30~35%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가. 2008년 현재 제18대 여성 국회의원 수 13.7%, 여성 지방의원 수 14.5%, 5급 이상의 국가직 여성 공무원 비율 10.8%(지방직의 경우 6.5%), 여성 판사 21.5%, 여성 검사 15.7%, 코스닥상장법인 중 여성 최고경영자(CEO) 1.36%, 5인 이상 사업체의 과장급 이상 여성 관리자 비율 8.1%다. 우리는 아직도 관리자급 여성 비율이 15%에도 못 미치는 남성일색집단에서 살고 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 관리자의 비율을 35% ‘임계질량’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특단의 ‘여성 세력화’ 대책이 급선무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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